9월에만 4곳 폐업 … 12월 대란설에 업계 ‘흉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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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2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 청담동의 한 2층 건물 주차장. 벤츠 S클래스, BMW 750i, 벤츠 E클래스가 나란히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앤틱 가구들이 즐비하다.
명품 핸드백을 옆에 놓고 앉아있는 30대와 50대로 추정되는 잘 차려입은 여성 두 명이 앉아 있다. 성형 전후를 보여주는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이 없다면 호텔 카페라고 할 만큼 고급스러운 이곳은 A성형외과 대기실.
30대 여성이 신상명세를 적어 건네니 상담실장이 “XX빌라 사시는 분들 자주 오세요”라며 친근감을 표한다. 기자에게 쌍꺼풀 수술 상담을 해준 한 30대 의사는 “쌍꺼풀 수술비는 기본이 100만원”이라며 “이번 달에 할인 이벤트를 한다”고 권했다.
의사가 직접 수술비를 거론하는 것은 의료계의 금기다. 칼을 대지 않는 미용 시술인 쁘띠 성형을 담당하는 다른 의사는 “머리 한번 하러 가느니 성형수술 받으시는 게 이익 아니겠느냐”며 “필러(보톡스처럼 주사를 맞아 파인 곳 등을 메워주는 시술) 한번 맞는 게 부담은 덜하다”고 권했다.
#2. 10월 19일 오후 서울 강북의 H호텔 결혼식장. 유명 연예인과 결혼한 신랑 측 하객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신사동의 A성형외과 원장은 “앞에서는 웃어도 뒤에서는 우리끼리 ‘요즘 너도 어렵냐’는 얘기만 했다”며 “얼마 전에 압구정동에서만 8곳이 넘어갔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교류가 잦은 성형외과 의사들이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는 건 결혼식장 정도다. 이 원장은 “임대료는 오히려 더 비싸고 시술비는 좀 더 싼 강남역이 가장 위험하다는 게 중론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역의 한 개원의는 “용산 집값이 올랐을 때는 압구정동이 잘되고 분당 등 서울 남부의 신도시 집값이 뛰면 우리가 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압구정·청담, 신사, 강남역 3개 권역 가운데 어디가 신호탄이 되느냐가 문제지 줄폐업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강남구청 의약과가 본지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 5월 강남구에서 새로 문을 연 성형외과는 6곳이었지만 9월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대로 폐업한 성형외과는 5월 4곳에서 여름 성수기 시작인 7월에 1곳으로 줄었다가 9월 들어 4곳으로 다시 급증했다. 병원창업컨설팅 업체 조인스엠의 김지영 대표는 “성수기를 두 번이나 놓친 병원들이 올 12월도 수요가 줄게 되면 마케팅과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곳을 시작으로 20~30% 이상의 병원이 문닫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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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성형외과 개원의 가운데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월급 의사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02년 정점을 찍고 2~3년 동안 잠잠하다가 2005년부터 다시 성형 붐이 일자 부랴부랴 개업을 준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3년 개업한 신사동의 한 의사는 “2년 전부터 큰돈을 굴리는 단골 사모님들이 ‘잘나갈 때 조심하라’고 충고한 게 들어맞고 있다”고 말했다.
개업의들은 “최소 성형 시술비인 눈 100만원, 코 150만원, 턱 600만원대인 박리다매형 병원은 항상 최소 2명 이상의 손님이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그나마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강남 성형외과를 살리고 있는 고객층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한 개업의는 “사모님들로 통칭되는 최상위층 부자 고객과 10개월 카드할부로 수술비를 내기도 하는 직장인·공무원들이 최근 주 고객”이라며 “한마디로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켜서 있을 만큼 돈이 많거나 경제상황에 아예 관심이 없는 월급 생활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원장 자살 등으로 분위기 스산
최근 한 강남 성형외과 의사가 자살하면서 가뜩이나 흉흉한 강남 거리는 한층 더 스산한 분위기로 변했다는 게 이 지역 개업의들의 설명이다. 에스테틱·피부과 원장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사건이다. 그러나 쉬쉬하는 통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남역의 한 개업의는 “사고가 일어난 병원들은 재정난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었다”며 확대해석에 선을 그었다.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만난 50대 중년 여성은 6개월마다 100만원을 들여 이마 등에 보톡스를 맞았다. 그녀는 현재 ▶환율이 올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송금액이 50% 늘어났고 ▶남편의 성과급이 끊긴 데다 ▶몰래 들어놨던 펀드가 원금에서 30%나 줄어들었지만 다른 문제가 더 걱정이다.
“남편이 앞으로 6개월은 돈 좀 아껴 쓰라는데, 연말 모임이 걱정이에요. 갑자기 확 늙어보일 것 아니에요. 할인 행사라도 찾아내서 12월 전에 한 번은 더 해야 하는데….”
인터뷰 창업 6개월 만에 폐업한 A씨
“9월 위기설로 대박 시즌에 파리 날렸죠”
성형외과 전문의 A씨는 2006년 5월 3억원을 들여 개업했다. 대학병원에서 잡을 만큼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선배들의 러브콜도 많았지만 개업을 선택했다.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곳이라 찜찜했지만 기술만은 자신있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폐업하고 월급의사 생활을 1년 동안 해야 했다. 그는 최근 지분을 투자해 강남 성형외과 ‘원장님’으로 복귀했다. 그는 끝까지 총 적자 액수만큼은 밝히지 않았다. -경영 사정이 어떤데 6개월 만에 폐업했나. “보험 진료까지 합쳐(성형외과는 대부분 비보험 진료다) 월 매출이 500만원 정도였다. 간호사 2명 월급으로 250만원 나가고 임대료 내면 월 매출만큼 적자가 쌓였다. 시술 장비도 새것으로 샀다가 절반은 다 처분했다.” -폐업 당시 경영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 “남들은 ‘깔고 간다’는 보톡스 같은 쁘띠 성형(칼을 대지 않는 미용 시술)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필러 주사(주사로 파인 곳 등을 메우는 주사 시술법)도 6개월 동안 겨우 두 번 했다. 한 번은 26만원짜리 하나를 사서 50만원 받고 해줬고, 또 한 번은 50만원 주고 산 3방짜리를 한 번에 50만원 받고 해주고 다 남겼다.” -폐업 후에는 어떻게 생활했나. “페이닥터(월급의사) 생활을 1년 동안 했다.” -월급은 어느 정도였나. “1000만원 받고 일했다. 1년 정도 하니까 여기저기서 동업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최근 페이닥터 하던 곳 지분을 사서 동업하고 있다.” -원인은 뭐라고 보나. “강남 성형외과 브랜드 파워가 워낙 막강하다.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수술 능력만으로는 안 되는 곳이 이 바닥이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페이닥터는 2년 동안 자기 병원을 하다가 성형수술 시즌인 지난해 연말과 올 8월 손님이 확 줄어들면서 지난달 폐업한 사람이다.” -신사동, 압구정·청담동, 강남역 3권역으로 나뉜 강남 성형외과의 12월 대란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에는 폐업이라고 하면 동업하다 갈라지거나 이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정말 폐업이다. 특히 메이저로 꼽히는 W, B성형외과 정도 말고는 많이 힘들다. 한 성형외과는 지난해 9월 매출이 2억원이 넘었는데 올해는 6000만원을 찍었다. ‘9월 경제위기설’이 퍼지면서 대박 시즌에 파리를 날렸다. 월 매출이 1억원 정도 하던 곳들이 2000만원이나 3000만원을 겨우 찍었다. 무척 위험한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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