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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닥’으로 ‘다빈치’ 꺾는다김태훈 큐렉소 회장의 의료로봇 도전기

도일 남건욱 2008. 10. 30. 13:49
‘로보닥’으로 ‘다빈치’ 꺾는다
김태훈 큐렉소 회장의 의료로봇 도전기
美 특허권 확보하자 FDA도 통과 … 15억 달러 규모 시장 진입 성공

"남몰래 심장병을 앓고 있던 한 여자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다. 너무 늦어 수술할 수 없다는 의사들의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절박한 순간, 한 의사가 ‘다빈치를 이용해 수술해 보겠다’고 말한다. 장면은 수술방으로 이어진다. 그는 조이스틱을 잡고 ‘의료 로봇’ 다빈치로 수술을 진행한다.”

한 방송사에서 인기를 끌었던 의학 드라마의 한 토막이다. 여기서 소개된 다빈치는 21세기 의료로봇의 선두주자다. 우리는 ‘국내외 외과의사들이 다빈치를 이용, 어려운 심장수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때때로 접한다. 미국의 저명한 메디컬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와이크(Alexandra Wyke)는 의료로봇에 대해 “21세기 기적의 신약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힌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 알려진 의료로봇은 IS(미국)의 다빈치와 Mako(미국)의 마코플래스티 등 두 개다. 다빈치는 심장수술 등 내장용 의료로봇이다. 마코플래스티는 무릎의 일부 관절을 수술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이들은 완전한 ‘의료로봇’이 아니다. 사람의 조종이 필요한 ‘반자동’이다. 드라마에서 ‘조이스틱’으로 다빈치를 조종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로봇 혼자 수술하는 시대는 요원할까? 올 8월 미국 의료계가 크게 들썩였다. 사람의 조종이 필요 없는, 그것도 20분 동안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관절 수술로봇 ‘로보닥(ROBODOC)’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보닥으로 수술할 때 의사의 역할은 단 하나. 관절을 어떻게, 얼마나 깎을지 기획하는 일뿐이다.

로봇 스스로 관절수술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더욱 입을 벌어지게 하는 것이 있다. 로보닥의 특허권을 갖고 있는 업체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중소기업 큐렉소㈜라는 점이다. 이 회사 김태훈(49) 회장은 “다빈치 등 기존 의료로봇이 조이스틱을 이용하는 반자동 개념이지만 로보닥은 완전한 의미의 자동 수술로봇”이라며 “로보닥이 FDA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인 의료혁명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큐렉소가 로보닥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돈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운이 따라서였을까? 둘 다 아니다. 김 회장의 치밀한 사전조사와 과감한 결단이 로보닥 특허권 확보의 원동력이었다. 로보닥 개발은 1985년 시작됐다. IBM과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대학이 공동으로 ‘로보닥 프로젝트’에 착수했던 것.

1990년 이후 IBM에서 분사한 ISS가 로보닥 연구개발을 이어받았고, 92년 26마리 개를 수술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미국 의학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로보닥이 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Smi-thsonian award’를 받았을 정도다. 로보닥의 승승장구는 이어졌다. 1996년 유럽 진출 자격증 ‘CE마크’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나스닥에도 상장됐다.

같은 시기 일본은 로보닥을 시범 도입(시제품)했고,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수입품목으로 승인(2002년)했다. 로보닥은 현재 이춘택 병원(2002년), 강동 가톨릭병원(2003년), 전남대병원,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울산병원(이하 2006년) 등에서 도입,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ISS의 로보닥에겐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FDA의 승인 과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심에 따라 미국 시장 개척에 실패했던 것. 미국 의료로봇 시장 규모는 15억 달러에 달한다. 2011년에는 28억 달러(약 2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성장률 또한 높다. 미국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면 영원히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ISS의 실책은 또 있었다. 무리한 M&A를 추진했다가 자금난에 몰렸던 것.

2006년 초 ISS의 부채는 3000만 달러에 달했고, 현금 보유량은 제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스닥에서도 ‘퇴출 명령’을 받았다. ISS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있던 2006년 3월, 김태훈 회장은 미국의 ‘바이오 클러스트 벨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바이오 관련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 미국 바이오 기업 ‘바이오 셉트’에 투자한 후 관련 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정글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로보닥 얘기를 들었다.”

김 회장은 발 빠르게 ISS와 로보닥에 대한 파악에 나섰다. 로보닥과 유사한 의료기기 다빈치 관련 정보도 수집했다. 수개월 조사 끝에 김 회장은 로보닥이 FDA의 장벽을 넘지 못한 이유를 찾아냈다.

“미 FDA는 PMA를 로보닥의 승인 기준으로 삼았다. PMA는 사람에게 사용해본 적 없는 의료기기의 승인 기준으로,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로보닥은 이미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PMA 기준을 적용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다빈치도 이보다 약한 기준인 510K(의료기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에 대한 제조 및 판매 승인 방식)를 통과했다. 만약 로보닥에 적용하고 있던 FDA의 승인 기준이 바뀐다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2006년 8월, 250억원에 ISS의 자산 일체를 인수했던 것. 과감한 결단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미국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들은 “조그만 한국의 중소기업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다 죽은 회사를 인수했다”며 “로보닥은 FDA의 장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김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보닥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FDA의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ISS의 자산(로보닥 특허권 등)을 인수한 우리는 미 FDA에 다빈치의 사례를 들며 승인 기준을 바꿀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결국 FDA는 ‘임상시험 조건’을 달면서 510K로 승인 기준을 하향 조정했다. 510K는 임상시험이 필요 없지만 FDA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큐렉소는 이후 FDA와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수천 쪽에 달하는 증빙서류를 제출한 것도 여러 번. 로보닥의 기술적 문제점에 대한 질의에 답한 것 또한 수백 번이 넘는다는 게 김 회장의 말이다. ISS 자산을 인수한 후 2년이 지난 2008년 8월, 로보닥은 천신만고 끝에 FDA 승인을 따냈다. 미국 의료기기 업체들이 깜짝 놀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김 회장은 “로보닥이 FDA의 까다로운 규정을 통과한 것은 인공관절 로봇수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세계적으로, 또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로보닥의 안전성과 효율성은 실제 의료업계에서 화제다. 무엇보다 수술 오차거리가 0.01㎜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경험 많은 외과의사가 수술해도 10~15%는 3㎜가량의 오차가 발생한다. 오차 각도 또한 거의 없다.

사람이 수술하면 5도, 10도가 틀어지는 것은 예사다. 거리 및 각도의 오차가 작은 덕분에 후유증도 거의 없다. 유명철 경희대 정형학과 교수는 “로보닥을 이용해 인공관절 수술을 여러 차례 진행했는데, 어떤 오차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다빈치를 능가하는 의료기기”라고 말했다.

큐렉소는 로보닥 특허권이 만료되는 2020년까지 제2, 제3의 의료로봇을 생산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 초 IBM이 가지고 있는 로봇수술 관련 특허 4만여 개를 추가로 확보했다. “IBM의 특허들은 골절·척추디스크·일반외과 수술 및 컴퓨터 원용 수술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기술이다. IBM 특허 사용권을 확보함에 따라 로보닥의 개선 및 추가 개발이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로보닥의 미국 시장 정식 데뷔는 내년 초로 계획돼 있다. 2009년 2월 열리는 미국정형학회 포럼에서 정식 소개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로보닥이 미국 시장에서 공식 론칭되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2009년 미국에서만 15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50억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미 FDA 허가방식
510K(Premarket Notification) 의료기와 비슷한 기능과 효용을 가진 의료 관련 기기에 한해 제조 및 판매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임상시험은 필요 없다. PMA(Premarket Approval) 사람에게 사용해본 전례가 없는 신규 개발 의료기에 대한 승인 기준이다. 임상시험을 요구하고,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