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카를 소재로 한 우스개가 증권가에 나돈다. 프로그램 매수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워낙 자주 발동되는 등 주가가 하도 널뛰는 것을 빗댄 이야기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용차는 사이드카” “우리나라 국민차는 ‘서킷 브레이크(주식시장 매매거래 중단 제도인 서킷 브레이커를 본뜸)’를 장착한 사이드카”라며 정부 정책과 경제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소식에 주가가 사상 최대로 오른 10월 30일 코스피 시장에선 올 들어 15번째, 코스닥 시장에는 14번째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그래도 이날 사이드카는 급등장에서 나왔고,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금융시장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를 성사시킨 것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강만수 장관이 잘했다고 칭찬했다. 벌써부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한국은행이 세트 플레이를 잘한 결과라며 서로 공치사에 바쁘다. 하지만 불과 11년 전 외환위기로 그렇게 뼈아픈 경험을 하고도 여태 남에게 기대어 간신히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면서 이를 자축하고 호들갑을 떨기는 부끄럽지 않은가.
한국은 미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은 14번째 국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이 유럽중앙은행(ECB)·스위스 중앙은행과 처음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은 지 열 달 보름 만이다. 더구나 ECB·스위스·영국(10월 13일)과 일본은행(10월 14일)에 대해선 스와프 한도를 없애 달러를 무제한 공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선 보름도 더 지나서야 한국 손을 잡아 주었다.
그사이 한국 돈(원화) 환율은 급등했고 주가는 계속 고꾸라졌다. 과연 미국은 한국이 예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달러 상수원에 300억 달러 파이프라인을 연결해주었을까? 미국이 한국까지 14개국을 ‘달러 우산’ 아래 끌어들인 것은 미국 돈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이제 14개국은 싫든 좋든 금리정책 등 일련의 시장 대응 조치에서 미국과 따로 놀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선진국끼리의 공조만으론 이번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풀기 어렵다는 점도 계산했다. 냉정하게 보면 한·미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내년 4월까지 최대 300억 달러를 빌려 쓸 수 있다는 단기 차입 계약에 다름 아니다.
기한 연장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년 4월까지 6개월 안에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경상수지부터 흑자 체제를 굳혀 투기세력이 한국을 넘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꾀하면서 수출을 늘려야 한다.
은행의 무리한 차입과 주택담보대출 등 외형 확장 경쟁도 이참에 확실히 뜯어고치고. 10월 한 달 우리는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여건이 비슷한 중국이나 말레이시아·인도는 가볍게 넘어간 미국발 홍역을 우리만 유달리 혹독하게 치르면서. 이제 겨우 ‘검은 10월’이 ‘검은 X-마스’로 이어질지 모를 길목에서 달러 우산 하나 더 받아온 형국이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에 만족하지 말고 더 많은 안전판을 확보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세계 1·2위 국가인 중국·일본과 2000년에 맺은 통화 스와프 한도를 늘리고 ‘위기 때만’으로 한정된 조건도 유연하게 바꾸자. 동아시아 국가들과 역내 공동기금 조성에도 힘쓰고. 안전장치는 튼튼하게 겹겹이 마련해야 한다.
한·미 통화 스와프만으로 경제·금융 위기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달러 부족 현상은 여전히 남아 있고, 실물 경기는 극도로 위축돼 있다. 게다가 지나친 가계대출이나 한계기업 도산 같은 지뢰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 11월이다. 벌써부터 옆구리가 시려 온다. 올겨울은 여느 때보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서민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매서운 추위로 다가올 게다.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 대책에 만전을 기할 때다. 금융시장이 한숨 돌렸다고 긴장을 풀거나, 더구나 샴페인을 터뜨렸다간 딱 사이드카 발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