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부터 신산업까지 추격 가속
한국 위협하는 중국 기업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BYD가 내년 미국에 시판할 전기차 ‘e6’. 한번 충전으로 400km 주행이 가능하다. |
한국은 중국 덕에 기대도 크고, 중국 탓에 위기도 남다르다. 거침없이 커지는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이 기대감이라면 일취월장의 기세로 성장하는 제조업 경쟁력은 그 자체가 위기로 다가온다. 불과 몇 년 새 중후장대형 산업 부문에서도 추격전이 치열하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10월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철강업체 대형화 정책에 따라 세계에서 철강업계 지도가 변하고 있다. 중국 최대 철강업체인 바오스틸(寶山鋼鐵)이 포스코를 추월해 세계 3위로 올랐고 허베이스틸(河北鋼鐵)이 4위에 오르는 등 세계 톱10에 중국 업체가 4개나 포진해 있다.
특히 1년 전만 해도 10위권 밖에 머무르던 허베이스틸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빠른 속도로 불려 조강생산력 순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이 경공업 부문에서 한국을 추격할 때만 해도 선수들은 대부분 ‘이름 없는’ 기업이었다. 추격전의 무대가 중공업으로 옮겨가면서 대표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추격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경쟁력이 단지 전통 제조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성장동력 산업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속에 스타급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BYD 세계적 전기차 업체 등극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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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하고 일본과 프랑스는 각각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 분야에서 단연 주목받고 있는 중국기업이 있다. 배터리 생산으로 시작한 BYD(比亞迪)는 이제 일반 자동차는 물론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며 중국 친환경 자동차산업의 선봉에 올라섰다.
BYD는 1995년 광둥(廣東)성에서 배터리 생산으로 시작한 신생회사다. 리튬이온전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휴대용 전지시장에서는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이 시장은 종래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BYD는 생산지역을 동유럽권, 인도 등 전 세계로 확대하고 생산 공정을 철저하게 세분화하는 한편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을 십분 활용해 생산 비용을 40% 이상 줄였다.
하페이(哈飛)는 미국 마일스오토모티브와 공동으로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내수는 물론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으로 수출까지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음은 물론이다. BYD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중소 자동차 제조업체를 인수한 후 전기자동차 개발에 뛰어들면서부터다.
배터리 생산업체라는 연관 분야의 경험이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BYD의 전기자동차 사업은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의 관심을 불렀고 버핏은 2008년 여름 BYD의 주식 10%를 취득했다. 이는 중국 전기자동차 업계의 일대 파란이었다. BYD의 주식이 그칠 줄 모르는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왕촨푸(王傳福) CEO는 일약 중국 최대의 부호로 떠올랐다.
2008년 자산 10억6000만 달러로 부호 순위 23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만에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다. 버핏도 BYD 투자 1년 만에 8억 달러의 이익을 챙겼다. BYD는 환경과 신에너지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2015년에는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내놓고 있다.
올해 매출대수는 40만 대 판매 정도지만 15년 후엔 1000만 대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BYD가 단기간 내 세계적인 친환경 자동차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신에너지 자동차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중국 재정부는 신에너지 자동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한다.
1단계로 공공버스, 택시, 공무용 차량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신에너지 자동차를 우선적으로 사용하게 하며 점차 전체 민용·공용 소비자들에게로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 과학기술부는 2009년부터 매년 10개 도시, 도시당 1000대 신에너지 자동차 시범운행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앞으로 3~4년 후에는 중국에 6만 대의 에너지 절약 및 신에너지 자동차를 보급하고 그 효과를 전국 범위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의 신에너지 차량 시장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의 관련 업체들이 중국시장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정부의 산업촉진 정책이 예정대로 시작된다면 중국은 자국 기업 생산 차량으로 시장을 키워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 위협하는 중국 기업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선테크파워 세계적 태양전지 경쟁력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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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거대한 용틀임을 쏟아내는 듯한 중국 경제의 현주소이자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1963년 장쑤성 양중(揚中)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중반까지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지린(吉林)대학과 중국과학원에서 기계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중국 정부 장학생에 선발돼 호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다.
UNSW에서 그는 태양에너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틴 그린 교수의 지도로 태양전지를 공부했다. 그린 교수는 무공해 태양에너지 활용 분야의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환경특별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스 회장은 1991년 태양전지기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이 대학 역사상 최단기간에 따낸 박사학위인 데다 성적도 가장 우수했다. 그는 1995년 호주에서 출범한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에너지 연구센터 멤버로 참여해 정상급 기술진과 함께 제2세대 다결정 실리콘 박막태양전지 연구에 몰두했다. 세계 각국에 10여 건의 국제발명특허를 출원했고, 국제 학술지와 학술회의를 통해 발표한 논문만도 150여 편에 달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태양전지는 연구의 대상이었지 비즈니스 아이템은 아니었다. 2000년 중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중국은 장차 환경오염과 에너지 부족이 심해져 무공해 에너지원의 확보가 경제 발전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시 중국의 태양에너지 산업은 걸음마 단계였지만, 연간 성장률이 40%를 넘어서고 있었다.
스정룽은 적합한 투자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더 큰 문제는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수개월째 고민에 빠져 있던 그에게 장쑤성 우시 시정부 관계자가 찾아왔다. 유망 토종기업을 발굴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계획을 가진 우시 정부가 600만 달러의 투자 자금을 선뜻 내놓았다.
정부가 스 회장의 기술을 믿고 벤처 투자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입지가 제주도보다 넓은 호수인 타이후(太湖)를 끼고 있는 우시였다. 당시 스 회장은 하이테크 기술력을 지분으로 인정받아 200만 달러 상당의 지분을 확보하는 행운도 얻었다.
2002년 8월 마침내 첫 제품이 나왔다.
이듬해부터는 생산량이 매년 서너 배씩 늘어났다. 이 무렵 스 회장은 해외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 지분을 줄여야 한다며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우시 정부는 그의 생각을 전격 수용했고 스 회장은 정부 보유 주식의 상당량을 인수해 마침내 지분율 46.8%의 최대주주가 됐다.
국유 기업으로 출발했던 선테크파워가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국가 최고위층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국무원이 원자바오 총리를 단장으로 한 전력에너지연구단을 만들어 기업 지원에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2004년 3월엔 원 총리가 직접 선테크파워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성공은 계속 이어졌다. 2005년 12월 14일 꿈에 그리던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첫 중국 기업이 됐다. 2006년엔 일본 최대 태양광 패널업체인 MSK를 인수했고, 중국 경제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CCTV 올해의 10대 경제인상을 받기도 했다.
선테크파워는 지난해 순이익 6억 달러로 중국 1위, 세계 5위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2002년부터 공을 들인 해외시장 개척 노력으로 매출의 80%를 유럽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위협하는 중국 기업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하이얼-가전, 선테크파워-태양전지서 두각
하이얼 그린 가전으로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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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GE가 있다면 중국에는 하이얼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84년 설립된 하이얼이 지난 25년간 거둔 성과를 본다면 결코 과찬이 아님을 알게 된다.
냉장고 하나만 생산하던 파산 직전의 가전업체가 지금은 백색 가전, 흑색 가전 할 것 없이 약 100개 카테고리, 1만5100여 개 규격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00년 2월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첫 해외공장을 준공한 후 유럽, 동남아, 일본은 물론 중동까지 진출해 해외에 생산기지 30개, 디자인센터 8개, 영업망 5만8800개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하이얼의 중국 가전시장 점유율은 20%를 훌쩍 넘어섰다. 백색 가전의 경우 하이얼은 중국 시장 점유율 35%로 독주하고 있다. 소형 가전도 15% 선의 점유율로 1위다. 해외시장에서는 전 세계 냉장고 생산 및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180L급 이하 소형냉장고 시장 점유율은 6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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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중국 시장은 상품의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상품을 생산해 놓으면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사 가는 시대였다. 기업들은 굳이 힘들여 좋은 상품을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장루이민은 “돈을 벌기보다는 브랜드를 창조해야 한다”며 품질관리에 노력했다.
1989년에 이르자 시장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생산해도 팔리지 않는 상품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때서야 많은 기업이 ‘품질경영’을 외치기 시작했다. 하이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품에 국한된 협의의 품질에서 벗어나 서비스까지 포함한 광의의 품질 개념을 도입했다.
품질관리는 생산현장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가정으로까지 연장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많은 사람이 하이얼을 민영기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국영기업이다. 이 때문에 경영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미 20년 전부터 품질경영을 내걸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이얼의 다음 목표는 전 세계 백색가전 시장에서 10%의 매출 점유율을 차지하고 가전제품 업계 1위가 되는 것이다. 최근 하이얼은 홈네트워크를 차세대 사업으로 선정했다.
홈네트워크 제품을 출시하고 통신사와 공동으로 홈네트워크 서비스 시장에도 진출해 조만간 중국 도시시장 점유율 15%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같이 중국 기업들의 위상이 날로 커지고 있고,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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