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아직은 생소”, 중소기업 “막막”
교토의정서 발효 3주년을 맞아 지난해 열렸던 `제3차 기후변화대책 주간 개막행사. |
4%. 이 수치 하나로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지난 1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20년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을 5억6900만t으로, 2005년 5억9400만t보다 2500만t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수치가 바로 2005년 배출량 기준으로 4%다.
언뜻 4%라는 수치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경제 규모는 자꾸 커지게 마련이다. 경제가 커진다는 것은 에너지의 사용량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위적으로 탄소를 감축하지 않을 경우 2020년 예상되는 배출전망치(BAU)는 8억1300만t.
이는 2005년에 비해 37% 증가한 수치다. 결국 2020년에는 예상 총 배출량을 8억1300만t에서 5억6900만t으로 줄인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감소하는 수치는 30%가 된다. 예상되는 탄소배출량을 30% 줄인다는 것은 경제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탄소의무감축국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비선진국에 권고하는 온실가스 감축 범위는 15~30%로 최고 수준이다. 이 중 정부는 ‘최대치’를 결정한 것이다. 실제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산업계로서는 보통 일이 아니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도 글로벌 인식으로 대응하고 무장해야 한다”며 “산업계 스스로도 기업 체질을 저탄소·고효율로 바꿔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기업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다. 회사가 내뿜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주어진 항목에 따라 탄소배출 요소를 채워 넣어야 하고 주어진 기준에 따라 거기서 배출되는 배출량을 정해야 한다. 국내 그룹 계열사인 A사 사례를 들어보자. 전산실 냉난방기 13개 8844㎥, 1층 냉난방기 6개 4523㎥, 2층 냉난방기…, 1층 주방 가스버너 57㎥, 운송차량(2.5t 트럭 3대, 5t 트럭 3대) 2347㎥….
이 회사에 대한 탄소배출현황표는 깨알만 한 글씨로 냉난방기, 가스버너, 운송차량 하나하나의 탄소를 비롯해 6대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록돼 있다. 월별로 1년 치를 계산한 이 표에는 냉난방기, 가스버너, 소화기 등 몇몇 탈루배출기 등 항목만으로도, 정말 깨알 같은 글씨로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웠다. 이 회사의 전체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기 위한 항목 및 배출량은 얼추 70쪽 정도는 될 듯하다.
보일러 하나까지 따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기업이 1년간 배출한 총량이 나온다. 직접 배출량이 415t, 간접배출량이 1113t으로 1418t에 이른다. 이 기준은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탄소측정 기구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만든 것이다.
탄소배출 문제가 심각한 경영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투자기업들이 출연해 만든 CDP는 2003년부터 매년 세계적인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탄소경영에 대한 평가를 해 왔다. 사단법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2007년 CDP 업무 대행을 맡아 CDP-Korea를 설립하고 3년 동안 국내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다.
“A기업은 매우 충실하게 탄소경영을 준비해 왔습니다. 회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향후 탄소량을 줄이기 위한 전략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특별팀을 운영하고 있지요.”(이종오 KoSIF 팀장)
“중소기업 전체 어려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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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보유 자동차 수를 줄이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돈’이다. 배출탄소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팀을 만들어야 하고 대부분의 경우 탄소관리 전문가를 새로 고용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생산·관리시설 중 상당수를 바꿔야 배출탄소를 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할당한 만큼 탄소를 줄이지 못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그것도 싫으면 다른 회사가 내놓은 ‘탄소배출권’을 돈 주고 사야 한다.
2009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LG전자를 보자. 2009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다.
생산부문에서는 생산시스템 및 프로세스 최적화 작업과 저효율 설비를 교체해 2012년까지 연간 7만5000t의 온실가스를 줄일 계획이고, LG전자가 만들어내는 제품도 2012년 에너지 효율을 2007년 대비 15% 향상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상당한 R&D투자를 계획하고 있다.하지만 아직 이런 기업은 매주 적은 편이다.
시가 총액 100대 기업을 조사했지만 응답사는 50개로 절반밖에 안 된다. 대기업도 탄소경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 팀장은 “탄소경영이 발등의 불인데도 아직 국내 기업들의 대응이 매우 미흡하다”며 “그래도 50개 기업을 조사해 16개 기업만 응답한 지난해보다 성적이 좋다”고 말한다.
대기업 상황이 이러니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직원 200명 규모의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 B사 K대표는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데 탄소배출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라며 “점점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돼 간다”고 한숨을 쉰다. 실제로 K대표는 “탄소배출과 관련된 문제는 신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로 말한다.
당연히 중소기업에서는 탄소배출과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현주소를 잘 알 수 있다. 중소기업의 84.9%가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절감 등의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원인은 당연히 ‘예산 부족’(22.4%).
“환경 관련 법적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취약한 중소기업들에 치명적일 수 있다.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자니 막막한 게 현실이다.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중소기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과감하게 ‘탄소정치’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당연히 ‘실보다 득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무역장벽의 돌파다. 프랑스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 나라의 상품에 대해 ‘탄소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이고, 유럽연합(EU)도 2012년부터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대폭 강화한 뒤 미달하면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 역시 2020년부터 온실가스 규제가 없는 나라의 수입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게다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저탄소·친환경산업은 혁명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신재생에너지 시장 규모는 2007년 773억 달러에서 2017년 2549억 달러로 300%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도 마찬가지여서, 태양광에너지 분야는 이미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 주류다. 여기에 시화호 조력발전소 등 각종 조력이나 풍력 등 새로운 에너지 생산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기업들은 지열을 활용한 냉난방 시스템이나 하이브리드 카나 수소연료전지 등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이 탄소배출권 거래다. 2005년 처음 시작된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는 지난해 1250억 달러에 이르는 수준으로 컸다.
전문가들은 2020년 2000억 달러로까지 클 것으로 본다. 국내에는 아직 정식 거래소가 없어 지자체의 관심을 끈다. 전남·광주가 이 탄소배출권거래소를 만들겠다며 정식으로 유치에 뛰어들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많은 것이 유리하다. 게다가 최근 국내 기업 간 첫 탄소배출권 거래가 일어나 관심을 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20일 작은 하천 등을 이용한 소(小)수력사업을 통해 유엔으로부터 발급받은 탄소배출권 7129CERs(CDM 사업을 통해 얻은 배출권·Certified Emission Red uctions)를 (주)한국탄소금융에 판다고 밝힌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와 관련된 각종 세미나에 토론이 붐을 일면서 머지않아 국내외 탄소배출권 거래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주요 용어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정부간기후변화패널):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 마련을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다. ▶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f Climate Change: 유엔기후변화협약):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의 인위적 방출을 규제하기 위한 협약으로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흡수 현황에 대한 국가통계 및 정책이행에 관한 국가보고서 작성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국내 정책 수립 및 시행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권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COP(Conference Of the parties: 기후변화당사국총회):지구온난화로 인한 장기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체결한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당사국들의 회의를 말한다.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제3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한 의정서다.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의 국제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하고 있다. |
‘재생’과 ‘지속 가능성’이 핵심 키워드
주목받는 7대 ‘그린 이코노미’
대구쓰레기매립장은 양질의 메탄가스를 재활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한 만큼 CO2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등록기간인 21년간 CO2 배출권을 팔 경우 예상되는 수입이 1700억원이다. 이 사례는 그야말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금맥’이 될 수 있는 신사업분야다. 기업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이런 산업은 무엇인가?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발행한 글로벌 그린뉴딜의 정책 보고서에서 ‘7대 그린 이코노미’를 알아본다. 1. 에너지 고효율 건물 전 세계의 건설업은 연간 3조 달러 규모에 이르며 종사자의 수도 매우 많다. 에너지 고효율 건물로의 전 세계적 이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에너지 저효율의 건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보다 크므로 해당 국가들의 잠재적 기대효과는 훨씬 크다. 2. 재생가능에너지 재생가능에너지 분야가 전 세계 주요 에너지산업에서 2%밖에 차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약 23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됐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 계획된 투자액은 6300억 달러며 이는 추가로 최소 20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청정개발체제(CDM)는 현재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세네갈과 같은 저임금 국가들의 전력 생산을 위해 재생가능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3. 지속가능한 운송수단 승객과 화물 운송 분야에서는 기존의 에너지 집약적 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 효율을 증대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장기적이고 단기적인 경제적 목표와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탄소 연료, 전동철도를 집적한 통합적인 운송 계획과 수요 경영이 필요하다. 자동차 생산자들을 위한 정부의 대규모 기업 구제 계획에 ‘녹색’조건을 포함해 자동차 연료 경제를 확대하고 보다 효과적인 에너지 저장장치의 개발을 장려하는 게 필요하다. 4. 담수 세계적으로 물 공급, 물 효율 시장은 2530억 달러이며 2020년까지 6580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된다.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과 기본적 위생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구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투자액은 연간 1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러한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연간 380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 기대된다. 5. 생태학적 기반시설 생태학적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중시하는 부분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수억 명의 빈민이 생태계에 의존해 생계를 꾸리고 있으며, 선진국 정부와 국제 개발 기관들은 재정 지원, 과학·기술적 협조, 시설물 건축에 대한 지원을 마련함으로써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생태학적 기반시설에 대한 계획은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접근을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부양, 지역 기업체의 경쟁력 강화, 그리고 환경 복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6. 지속가능한 농업 농업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모두 중요한 산업이다. 1ha당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농작물의 성장률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부들이 화학 약품과 화석 연료의 투입에 과도하게 의존해 토양과 생태계에 해를 입혀 오히려 수확량 감소를 야기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식품 안전성을 늘리고 빈곤을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전략이다. 7. 폐기물 처리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은 공공정책의 시급한 논제다. 경제성장과 산업화, 물리적·제도상의 인프라 결핍으로 인해 쓰레기의 부피와 종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쓰레기량의 증가와 이것이 지니는 관련 위험성의 증가는 세계적, 지역적 환경, 천연자원, 공중위생, 지역경제와 생활여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도시에서 만들어지는 고체 폐기물의 양은 2006년 20.2억t에 달했으며, 2003년 이후 매년 7%의 증가율을 나타낸다. 정하연 지역연구센터 인턴기자·vivelavie7@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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