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경제발전위원회’ 구성해 발전 구도 개조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경북도청에서 열린 제3차 지역발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한때 공비가 출몰한다는 얘기에 발길이 잘 가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얘기가 다르다. 남북관계가 많이 개선된 데다 수려한 자연, 다양한 역사 자원이 알려지면서 국내 최고 관광지로 급부상 중이다. 연간 관광객만 300만 명에 이른다.
자, 서울에서 출발한다 생각하고 길을 찾아 보자. 일단 자유로로 들어가 일산대교를 넘어 김포를 통해 간다고 치자.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건너면 바로 강화가 나온다. 이상한 일이다. 시원한 8차로 도로가 어느 틈에 6차로로 바뀐다. 김포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좌우에는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어서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리고 차선은 어느덧 4차로로 줄어든다. 김포와 강화의 경계선인 ‘월곶’부터다. 여기서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강화에서 초지대교를 넘어 인천으로 향하는 도로는 더욱 갑갑하다. 끝까지 4차로. 휴일이면 길이 막혀 짜증이 날 지경이다.
“이유는 행정구역 때문입니다. 강화의 진입로는 모두 김포를 통과해야 하는데요, 강화는 인천광역시인 반면 김포는 경기도인 탓에 좀처럼 협조가 안 됩니다. 경기도 정책 순위에서 밀리는 탓에 좀처럼 도로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김포신도시 건설사업의 일환인 경전철도 김포까지만 오지요. 월곶에서 딱 끊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 300만 관광객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한종원 관광팀장)
강화는 ‘행정구역’과 관련해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다. 줄곧 경기도의 한가족이었다가 1995년 인천이 광역시로 커지면서 강화도 함께 빠져나갔다. 강화주민의 반대도 많았지만 국가의 결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강화의 행정구역은 계속 문제가 됐다. 강화주민도 경기도도 모두 강화가 경기도 일원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강화군 한 관계자는 “손학규 지사 시절 ‘강화군의 경기도 환원운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인천’인 강화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강화의 이 ‘억울함’이 풀릴 전망이다. 정부의 광역경제권 발전정책 덕이다.
이른바 ‘5+2정책’으로도 불리는 광역경제권 정책은 지역을, 행정구역을 넘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행정구역이라는 ‘울타리’에서 오는 비효율성을 차단할 목적을 갖고 있다. 산업도 행정구역을 넘나들게 만들고, 사회간접자본(SOC)도 행정구역에서 비롯된 ‘분절현상’을 없앨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가’ 역할 약화, ‘지역’ 중요성 커져
무엇보다 구체적인 ‘기구’가 만들어졌다는 데 실질적인 정책 운영의 기대감이 생긴다. 지난 9월 모든 광역경제권에 내부 지자체 단체장을 위원장으로 한 ‘광역경제발전위원회(이하 광역위원회)’가 구성됐다.
공모를 거쳐 취임한 사무총장이 실무 책임자다. 지역 내 지도층 인사 15인으로 구성된 이 광역위원회는 행정구역으로 쪼개졌다는 이유에서 나오는 온갖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다. 강화는 서울·인천·경기가 하나로 묶인 수도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사실 행정구역이 주는 문제는 적지 않습니다. 교통이나 상하수도 문제에서, 산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범위도 매우 크지요. 강화의 도로 문제는 아마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현 정부는 정책조정을 통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광역경제권 발전정책을 추진하는 이유고, 광역경제발전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지역발전정책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지요.”(김종호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그렇다면 왜 광역일까? 한마디로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글로벌화와 지역화라는 메가 트렌드를 경험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의 확산으로 세계경제의 초국경적 개방화가 가속화되면서, 개별 ‘국가경제’에서 ‘하나의 지구촌경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광역개발, 시대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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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발전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보자. 산업화에 기반을 두고 개방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이미 ‘과거’다. 이때의 지역발전은 인구와 산업이 집중된 도시와 산업단지 등 개별 거점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FTA 등 전방위적 개방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지식기반경제나 녹색성장이 화두다. 초고속 교통과 통신망의 발달, 산업 간 융복합화, 경제활동과 생활권의 광대역화는 경제발전의 필수. 당연히 지역발전의 핵심적 공간단위도 광역경제권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광역경제권은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부문 및 지역 간 네트워크와 융복합이 가능한 성장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선진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선두주자다. 이미 글로벌화와 분권화에 대응한 국가 및 지역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광역발전정책을 시행하고 있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광역화 논의를 진행하다가 1997년 블레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잉글랜드를 9대 광역권으로 개발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광역단위로 설치된 지역개발청(RDA: Regional Development Agency)이 지역경제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중앙으로부터 단일예산(Single Pot) 형식의 재원을 활용해 지역개발사업 등을 통한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 등을 도모해 나가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화, EU통합 등에 대응해 2000년 22개 지역(레지옹, Region)을 6개 대권역(Grandes Regions)으로 구분하는 안을 발표했다. 또 2009년 4월 사르코지 대통령은 “파리와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드프랑스 지역을 수도권으로 통합해 탈규제 및 집적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선언해 광역경제권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독일도 16개로 구성된 연방주를 9개 광역경제권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지역 경제권의 부상, 저성장의 심화, 고령화, 분권화 등에 대응해 중앙정부가 수립하는 전국계획 이외에 광역권 단위의 광역지방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2006년 8개 광역지방행정구역이 확정된 이후 중앙정부의 지방행정기관, 지자체, 지역공공기관 등이 참여하는 광역지방행정협의회를 구성해 광역발전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는 대도시권 중심의 광역관리에 주력했지만 최근 대도시권의 공간영역을 넘어서는 메가 리전(mega region) 육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도 개방정책 이후 고도 경제성장의 중심 역할을 한 연해지역의 주장(珠江), 창장(長江), 징진지(京津冀) 등 거대권역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내륙지역으로 광역권 형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은 분명 광역경제권입니다. 집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 세계적인 광역도시권을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를 통해 행정구역 구분이 주는 난맥과 산재해 있던 지역 역량을 몇몇 중심 지역으로 모으겠다는 시도지요.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지역 간 경쟁이 극도로 심화되면서 나온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지원센터 소장)
우리나라도 이 ‘흐름’을 타기로 했다. 광역시나 도 등 행정구역 중심의 지역발전정책 추진에 따른 중복과 비효율이 컸기 때문이다. 2008년 이 문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규모와 네트워크 경제(Economies of Scale and Network)에 기반해 새로운 지역발전전략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정식 정책으로 채택됐다. 바로 광역경제권 발전정책이 그것이다.
‘5+2’ 광역경제권 정책은 인수위 시절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박형준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행정구역에 가로막혀 공동으로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을 각각 함으로써 서로 중복되거나 기능적으로 비효율적인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광역경제권 발전정책을 발표했다.
광역경제권 발전정책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전국 16개 시·도를 인구, 산업, 인프라, 역사·문화적 동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7개 광역경제권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충청권(대전·충남·충북), 호남권(광주·전남·전북), 대경권(대구·경북),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등 5개 광역경제권과 강원권·제주권 등 2개의 특별광역경제권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5+2’라는 7개 권역이 등장한 것이다.
이 정책으로 정부는 국토 및 지역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광역경제권은 나름의 발전 전략을 갖는다. 수도권은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충청권은 과학기술과 첨단산업 중심인 대한민국의 실리콘밸리, 호남권은 21세기 문화예술과 친환경 녹색산업의 창조지역, 대경권은 전통문화와 첨단 지식산업의 신성장지대, 동남권은 환태평양 시대의 기간산업 및 물류 중심지를 목표로 광역발전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특별광역경제권인 강원권은 환동해권 관광휴양 및 웰빙산업의 프런티어, 제주권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국제자유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광역경제권 개발은 이명박 대선캠프 때부터 마련됐다. 호남 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호남광역경제권 발전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광역경제권 실질적 수혜자는 지역 주체
이 같은 정책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권역별로 선도산업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거점 대학 육성 등 핵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련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또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를 통해 재정지원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광역경제권별로 시·도지사가 (공동)의장으로 참여하는 광역경제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무국을 설치해 시·도 간 협력에 기반한 지역 주도의 광역발전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광역발전정책의 최종 수혜자는 지역 주체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여기에는 주민과 기업, 대학, 지자체 등이 들어간다.
시·도 주민은 일상생활에 많이 이용하는 광역도로와 철도 등 연계 교통망이 확충되고 해외와 직접 연계될 수 있는 글로벌 인프라와 접근성이 강화되며, 수자원 등 각종 광역적 기반시설의 공유를 통해 시설공급비용이 절감되고 운영효율이 증가함으로써, 이로 인한 경제성 및 주민 편의성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광역시와 도의 행정구역단위로 주력산업이 선정되고 대학 지원, R&D투자와 인프라 확충 등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도를 연계한 다양한 협력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광역경제권 내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광역권 범위를 넘어 분포되어 있는 관련 분야의 대학과 기업들 간의 R&D활동, 신기술 및 신상품 개발, 교육·훈련 등에 대한 지원이 강화됨으로써 대학과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산학연의 광역적 클러스터 형성을 촉진함으로써 지역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 지역 간 협력을 높이는 사례도 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과거에는 모든 광역지자체가 자체 생산자 서비스나 첨단제조업을 확충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 꼭 그럴 필요가 없다. 각각의 지자체는 특화된 서비스와 산업을 확보하고 서로 유기적인 연계가 이뤄지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시너지를 높이고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물론 남는 예산으로 새로운 사업도 가능해질 것이다. 해당 주민들은 문화·레저 측면에서도 혜택을 볼 수 있다. 과거 시·도 광역지자체는 각종 문화체육시설을 자기 지역에만 유치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부지와 예산이 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광역경제권 동반발전 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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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권역 개발, 생활권 개발 등의 명칭으로 광역적 발전을 지향하는 정책들이 추진되었으나 그 성과가 높지 않았다. 광역지자체에 인근 지역이 필요로 하는 시설과 기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관 행정구역 내에 모든 시설을 갖추려는 소지역주의와 이를 위한 예산확보 경쟁, 사업유치 경쟁이 계속되었다.
여기에는 행정구역의 분할과 민선지자체장 선거제도, 협력적 활동을 촉진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행정 및 재정시스템 미비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들어 대경권과 동남권 등을 중심으로 광역발전을 위한 협력을 해오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시·도 간 공동발전을 위한 계획수립과 사업추진 경험이 많지 않으며, 행정구역 중심으로 고착화된 정책추진체제에서 지역 간 동반발전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특히, 광역발전이 시·도 행정구역 범위를 초월하는 사업을 단순히 추가적으로 시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시·도의 산업, 기업, 대학, 인재 등을 긴밀히 연계해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광역경제권 간의 동반발전으로 국가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지역발전정책은 흔히 ‘3층구조’로 불린다. 163개 시·군 단위의 기초지자체를 1차원적 ‘기초생활권’으로 보고, 이를 뛰어넘는 것이 ‘5+2 광역경제권’이라면, 또 이 ‘광역경제권’을 뛰어넘는 개발지역으로 ‘초광역개발권’을 설정한 것이다.
지난 2일 지역발전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2009년 제3차 지역발전위원회’를 개최하고 초광역개발권 ‘5대 추진방향’과 ‘4대 벨트’ 기본구상을 발표해 지역발전정책에 대한 또 하나의 장을 마련했다. 이날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지역발전은 개별 도시 단위로 추진해서는 경쟁력이 없다”며 “광역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해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경을 뛰어넘어 동북아 국가들 간 협력을 강화하자는 등의 ‘동북아 초국경적 경제협력 촉진’ 등이 추진 방향의 골자라면, 남해안 선 벨트 조성 등이 ‘4대 벨트’의 핵심 내용이다.
■초광역개발권 5대 추진방향
▶동북아 초국경적 경제협력 촉진=환황해권, 환동해권, 환태평양권 등 권역을 나눠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인근 국가들과 물류·관광·환경 등 협력 강화.
▶초국경·초광역 국토 인프라 구축=동북아와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 통합적인 교통·물류망 확충.
▶세계 수준의 초광역적 신산업벨트 구축=점(點)적인 산업단지를 연계·융복합화해 신산업 성장벨트로 조성.
▶창조산업 및 창조지역 육성=백두대간, 하천 등 초광역적으로 이어지는 국토 공유자원과 역사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창조산업과 창조지역을 육성.
▶통일시대 대비한 국토기반 조성=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산업·관광 분야 등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생태관광네트워크를 구축.
■4대 벨트 기본 구상
▶남해안 선 벨트=동북아의 물류·산업 및 해양휴양 등 경제허브로 육성.
▶동해안 에너지·관광벨트(블루벨트)=에너지, 해양관광 등 녹색성장의 전진기지화.
▶서해안 신산업벨트(골드벨트)=동북아의 국제비즈니스 거점 및 글로벌 산업벨트화.
▶남북접경지역의 생태·평화벨트=DMZ를 중심으로 생태·관광네트워크 구축.
황필선 지역연구센터 연구원·pshw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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