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바르샤 자존심 꺾은 스폰서의 힘

도일 남건욱 2011. 3. 22. 12:26

바르샤 자존심 꺾은 스폰서의 힘
[스포츠 경제]
[11호] 2011년 03월 01일 (화) 김창금 economyinsight@hani.co.kr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클럽 그 이상’을 지향하는 FC 바르셀로나도 결국 손들었다. 지난해 말 카타르 파운데이션과 유니폼 윗옷 스폰서 계약을 맺으면서 2006년부터 달았던 유니세프(UNICEF) 로고를 다음 시즌부터 유니폼 뒤쪽으로 밀어냈다. 유니폼 가슴팍을 차지하는 손바닥 두 개만 한 공간의 스폰서료는 연 4천만달러다. 제아무리 자존심이 센 구단이라도 이런 돈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의 프로축구 클럽은 진작에 가슴팍 공간을 천문학적인 홍보 공간으로 팔아왔다. 잉글랜드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미국의 보험기업 에이온(Aon)으로부터 연간 3200만달러를 받는다. 2005년부터 첼시를 후원한 삼성도 유니폼 상단에 로고 노출 대가로 연간 200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오히려 그동한 축구 순수주의를 추구하며 공익성 강한 유니세프 로고를 달고 뛰었던 바르셀로나가 특이한 팀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단 운영 재정 부담 때문에 자존심을 내준 꼴이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한겨레> 스페인 축구통신원인 스티브 김은 “스페인 안에서도 ‘깍쟁이’ ‘구두쇠’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사람들조차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르셀로나 전체 예산의 8%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110년의 전통을 깨야 하느냐”는 현지 목소리를 전했다.

   
 
미국에서도 유니폼 스폰서 광고 논란이 불붙었다. ‘웬 미국에서?’라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상업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에서도 아직 성역은 있다. 바로 4대 메이저 스포츠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 메이저리그(MLB), 미국프로농구(NBA), 북미하키리그(NHL) 선수 유니폼의 가슴팍 공간이다. 이들 리그에서는 유니폼 상단에 기업 로고를 붙이지 않는다. 야구나 아이스하키 헬멧에도 광고 스티커는 없다. 오로지 리그 엠블럼과 구단 이름이 있을 뿐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물품 공급 업체의 로고는 매우 작게 들어가 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지옥에서도 계약을 성사시킬 준비가 돼 있고, 실제 슈퍼볼 30초짜리 광고를 300만달러 안팎에 파는 미국의 스포츠 비즈니스 관행을 고려하면 의외다.

미국 프로스포츠에도 성역은 있다
그러나 이곳도 철옹성은 아니다. 슬슬 옆구리를 찌르는 변화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설 조사기관인 호라이즌 미디어는 최근 미국 4대 스포츠의 유니폼 스폰서의 잠재가치가 총 3억7천만달러라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미식축구는 몫이 가장 큰 2억3천만달러의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방송 노출도가 높은 댈러스 카우보이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뉴욕 자이언츠, 뉴욕 제츠,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각 구단별로 연 1400만달러의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간판인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가 각각 1300만달러까지 스폰서 영업이 가능하고, NBA는 우승 전문 LA 레이커스가 400만달러에 유니폼 노출 광고를 팔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호라이즌 미디어는 텔레비전 스크린의 3.5%에 해당하는 로고를 기준으로, 카메라 노출 시간, 선수들의 움직임과 멈춤 동작 등을 30초 광고 집행 비용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추정해냈다(<표> 참조).
물론 구단마다 값은 다르다. 이번 보고서가 100% 정확한 것도 아니다. 유니폼 판매를 통한 추가 매출 규모를 고려하지 않았고, 30초 광고로 환산한 것에도 거품은 있다. 하지만 4대 메이저의 유니폼 광고 가치를 처음으로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면서 관심은 커지고 있다. 당장 미국의 대런 로벨 <CNBC> 스포츠 비즈니스 기자는 “각 리그가 로고를 가슴에 다는 것은 마지막 스포츠 성역을 깨는 것”이라며, “주변의 모든 곳에서 기업 로고를 보는 환경에서 유니폼의 로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놀랍다”고 말했다. 자신의 트위터 설문조사 결과, “655명의 응답자 가운데 46%가 성역을 깨는 일이라고 응답한 반면, 54%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2009년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에서 우승한 뒤 유니세프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을 돌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보수주의 아성은 마이너 스포츠 쪽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올 시즌을 앞두고 D.C. 유나이티드가 폴크스바겐, 시카고가 베스트바이, 뉴욕이 레드불과 각각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18개 팀 가운데 13개 팀이 유니폼 로고를 팔았다. 올 시즌 데뷔하는 포틀랜드 팀버스도 알래스카 에어라인과 계약을 맺었다. NBA에 비해 재정 여건이 열악한 여자 프로농구 쪽에서는 피닉스 머큐리팀이 연 100만달러에 라이프록과 저지(운동복 셔츠)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4개 팀이 후원을 받고 있다. NBA의 하부 리그인 D리그의 리오그란데밸리 바이퍼스, 이리 베이호크스팀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리그가 규정한 광고 사이즈에 따라 각각 론스타내셔널뱅크, 레콤(LECOM)과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다만, 두 구단은 팀 이름이 있는 상단이 아니라 배꼽 부분에 로고를 달았다.
 
돈 밝히다 팬 잃을라
반면 메이저의 전통 고수 경향은 거세다. NBA 전임 마케팅 책임자였으며 현 피닉스 선스 구단 회장인 릭 웰츠는 “다른 나라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며, 리그의 상층부도 유니폼 스폰서 영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견해를 피력했다. 유니폼 스폰서의 비즈니스 가치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상당수 팬들의 거부감을 두고 모험을 하기 싫다는 뉘앙스다. NBA나 NFL의 연습경기 때 기업 로고가 달린 유니폼을 입기도 하고, MLB도 해외 경기 때는 로고 스폰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무대가 아니다.
최준서 샌프란시스코대학 스포츠매니지먼트 교수는 “유니폼 스폰서 문제는 전반적인 미국의 경제 상황과 직결돼 있다. 2~3년 전처럼 스폰서십 시장이 극도로 얼어붙은 경우엔 창의적인 시도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저지 광고는 리그나 구단 입장에서 스포츠 상업화를 막는 ‘마지막 보루’로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어 최후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광고 수입이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팬들이 등을 돌린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집단이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리그”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어떨까? 프로야구 선수 헬멧의 좌우는 물론이고, 소매까지 덕지덕지 붙은 스폰서 로고는 일반화됐다. 프로축구와 농구, 배구도 광고 노출이 많다. 팀이 재정적으로 불안정하고 기업 중심으로 팀이 창단되면서 유니폼 스폰서 로고는 모기업과 자연스럽게 결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무분별할 정도로 유니폼이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 진출한 국내 골퍼들도 무릎 위나 뒷주머니 덮개까지 스폰서 로고를 박은 것이 눈에 띈다. 심지어 아카데미의 상징인 소속 대학의 로고까지 노출한다. 경제 논리의 현실적 힘을 무시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 미국의 스포츠 보수주의 철학도 한 번쯤 필요한 것은 아닐까.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