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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리다체코 필젠의 이색 도시경영

도일 남건욱 2011. 9. 8. 17:34

 

맥주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리다
체코 필젠의 이색 도시경영
169년간 축제 열면서 ‘맥주 성지’로 떠올라

필스너 우르켈의 지하 양조장.

동유럽 체코의 작은 도시 필젠(Plsen)이 맥주의 성지로 떠오른다. 필젠에서 매년 열리는 맥주 축제 ‘필스너 페스트’는 독일 ‘옥토버 페스티벌’에 버금간다는 얘기도 나온다.
‘맥주의, 맥주를 위한, 맥주에 의한’ 도시 필젠의 저력을 현장 취재했다.


동유럽의 ‘진주’ 체코. 별칭은 아름답지만 아픔을 간직한 국가다. 체코는 1618년 시작된 30년 종교전쟁에서 참패해 국권을 잃었다. 가톨릭의 봉건성에 반기를 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힘을 등에 업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였다. 1918년까지 이들의 지배는 계속됐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했지만 1938년 나치 독일에 다시 합병됐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단 하루 만에 점령되는 굴욕까지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 체코가 독립국이 된 것은 불과 18년 전인 1993년의 일이다.

체코 국민은 이런 아픔을 ‘저항’으로 표출했다. 종교전쟁의 발원지도, 반(反)공산주의 열풍의 진원지도 사실 체코다. “억압·아픔·저항.” 체코의 인상은 이랬다. 옳은 느낌일까. 체코에 출장을 떠나기 전 현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체코인의 민족성을 물었다. 2003년 체코에 정착한 오승근 촬영감독은 “아픈 역사가 있어서인지 체코인은 자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라고 말했다.

체코의 자존심은 자동차·맥주
체코인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예는 많다. 체코는 오랫동안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자국어를 잃지 않았다. 체코인 90%가 체코어를 쓴다. 억양은 억센 이탈리아어 같다. 2004년 5월 1일 EU(유럽연합)의 정회원국이 됐지만 아직도 유로화가 아닌 자국 화폐 ‘코루나(Koruna)’를 사용한다. 한화 1원은 약 65코루나다. 체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찰스대에서 체코어를 전공한 공연기획사 Ku&Char s.r.o의 구영모 대표는 “체코 사람들의 자존심은 주로 자동차와 맥주를 통해 나타난다”고 전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체코에는 과연 어떤 자동차가 있고, 어떤 맥주가 있을까.

8월 25일 오후 2시. 두 가지 궁금증을 품고 체코행 비행기를 탔다. 체코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는 데 꼬박 11시간이 걸렸다. 공항 출입구를 빠져나올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맥도날드와 KFC 광고판. 미국의 프랜차이즈는 체코인의 배타적인 성향까지 무너뜨렸다. 구영모 대표가 말했던 자동차·맥주의 현주소는 어떨까.


체코의 국민차는 스코다(skoda)다. 체코에서 만난 은행 직원 루카쉬는 “스코다는 정말 멋진 차”라며 “체코에서 이런 차를 만든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는 카트리나도 “체코인 10명 중 7명은 스코다를 타고 다닌다”며 “다른 유럽 국가에서 스코다를 보면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틀렸다. 체코에서 스코다의 위상은 다소 부풀려졌거나 감정적인 면이 많다. 카트리나는 체코인의 70%가 스코다를 탄다고 했지만 실제 시장점유율은 30% 안팎이다. 게다가 1991년 독일 폭스바겐에 인수돼 국민차라는 명성에 흠집이 났다.

스코다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는 업체는 일본 도요타도, 미국의 포드도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차다. 둘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15%에 육박한다. 스코다에 이어 2위다.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체코인의 자존심 스코다는 흔들리고 있다. 그 중심에 현대차와 기아차가 있다.”

 


이제 의문은 한 개 남았다. 맥주의 위상이다. 체코 브라티슬라바대에 다니는 파펠은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맥주가 체코에서 생산된다”고 말했다. 체코의 작은 도시 ‘필젠(Plsen)’에서 브루마스터(맥주 양조기술자)로 일하는 파벨 브루카는 흥미로운 말을 했다.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좋아하는 국가는 어디일까요? 독일 아니면 일본? 둘 다 아닙니다. 체코가 맥주를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많이 마십니다.”

맥주 하면 독일 아닌가. 확인해 보니 기자가 틀렸고, 파벨 브루카의 말이 옳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맥주를 마시는 국가는 체코다. 모닝 커피 대신 모닝 맥주를 마시는 게 이들이다. 1인당 맥주 소비량은 157L에 달한다. 독일·미국보다 각각 17L, 55L 많다. 한국은 개인당 37L밖에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체코에서는 물값이 맥주 가격보다 비싸다. 체코 프라하에서 중급 레스토랑에 들렀다. 체코의 인기 맥주 ‘감브리누스(Gambrinus)’는 0.5L에 28코루나(약 1820원), 0.25L의 물은 25코루나(약 1625원)다. 양을 맞추면 물값은 50코루나(약 3250원)에 달한다. 맥주값이 물보다 싼 나라, 바로 체코다.

세계 라거맥주 시장 90%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많이 마시고, 맥주값이 싸다고 체코가 맥주왕국이라는 건 아니다. 체코 맥주에는 이 나라의 역사가 관통한다. 체코인이 가장 존경하는 왕은 ‘성(聖)’ 바츨라프다. 바츨라프가 왕이었던 중세시대 체코는 맥주 생산의 황금기였다. 그러다 1620년 빌라호라(Bila hora) 전투에서 체코가 패배해 독일 계통(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를 받자 맥주의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량이 급감했다. 19세기 체코의 민족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활기를 띤 곳이 맥주업계였다. 당시 체코는 민족자본으로 양조장을 건설하고 맥주를 생산했다.

체코인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브랜드는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다. 지난해 체코에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필스너 우르켈에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덜 알려진 필스너 우르켈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맥주다. 세계 라거맥주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라거맥주는 낮은 온도에서 숙성시키는 ‘하면발효’ 맥주를 말한다.

라거맥주의 원조는 독일이다. 1800년대 초 독일은 하면발효법을 개발해 짙은 색깔의 라거맥주를 출시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황금색 라거맥주는 ‘필스너 우르켈’이 시초다. 필스너 우르켈을 만든 ‘Mr.그루’는 필젠의 보리·홉(맥주의 맛을 내는 식물)·물을 절묘하게 섞어 ‘황금색’ 맥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황금색을 띤 필스너 우르켈이 출시되자 전 세계에 황금라거 열풍이 불었다. 덩달아 맥주잔이 투명하게 바뀌었다. 맥주가 공예산업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페트르는 “필스너 우르켈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맥주”라며 “무조건 최고”라고 말했다. 그는 “필스너 우르켈 한잔 하고 가라”며 기자의 앞길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남아 있던 의문이 명쾌하게 풀렸다. 답은 이랬다. “체코인은 맥주를 사랑한다. 체코의 위상은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다.”

체코에서의 여정은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 ‘필젠’에 맞췄다. 필젠은 요즘 맥주산업의 성지로 떠오른다. 주민 수 17만 명에 불과한 ‘시골마을’ 필젠이 어떻게 맥주 성지로 크고 있을까.

필젠은 프라하의 서쪽 90㎞ 지점에 있다. 프라하 공항에서 빠져나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50여 분이면 도착한다. 입지조건은 더할나위없이 좋다. 도시는 작고 한가로워 보인다. 반나절이면 도시 전체를 모두 구경할 수도 있다. 필젠의 중심은 ‘퍼블릭 스퀘어’ 광장이다. 성 바르톨로뮤성당의 102.3m 첨탑이나 세계 3대 유대교 예배당 중 하나인 그레이트 시나고그은 퍼블릭 스퀘어를 중심으로 3~4분 거리에 있다.

필젠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Plzensky Prazdroj) 공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한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 공장은 연간 500만L의 맥주를 생산한다. 그중 200만L가 필스너 우르켈이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는 필스너 우르켈의 탄생일(1842년 11월)에 ‘필스너 페스트’를 개최한다. 축제기간에는 패키징 홀(병·라벨 생산공장)·브루하우스(맥주제조처) 등 공장 대부분을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올해는 8월 25~26일 양일간 필스너 페스트가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작정한 듯 맥주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필스너 우르켈의 고유 색깔인 녹색 티셔츠를 입은 이들의 행렬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젊은 사람부터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정주부도 많다. 맥주를 사랑하는 민족 그대로의 모습이다.(※이번 필스너 페스트에는 4만2000명이 방문했다. 축제 기간 13만 병에 담을 수 있는 맥주 6만5000L가 소비됐다.)

필스너 페스트 활용해 성장하는 필젠시
축제가 열리는 공장은 말 그대로 ‘놀이판’이다. 10m 높이의 ‘감브리누스 구조물’에서는 등반게임이 한창이다. 필스너 우르켈의 거품 맞추기 행사도 진행된다. 맥주를 따랐을 때 거품 높이가 35㎜에 근접한 이가 승리한다. 이는 필스너 우르켈의 품질을 알리기 위한 전략적 행사다. 필스너 우르켈의 맥주는 세계 최고의 질로 손꼽힌다. 체코 맥주 제조업자 사이에서는 “필스너 우르켈을 잘 따르려면 7분이 걸린다”는 말까지 있다. 실제로 거품 맞추기 행사에는 일반인이 아닌 맥주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 행사에서 승리하는 건 영예로운 일이다.

필스너 페스트의 또 하나의 재미는 록페스티벌이 함께 열린다는 것이다. 별도로 마련된 필스너 스테이지에서는 록 뮤지션들이 천상의 연주를 들려준다. 이틀 동안 두 개의 스테이지에는 체코의 내로라하는 뮤지선 25여 개 팀이 연주를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을 이해하는 어른의 음악이 나오고, 체코의 젊은 음악도 흥겹게 울려퍼진다.

 


행사의 백미는 축제 첫째 날 열리는 ‘피보(Pivo) 행사’다. 피보는 체코어로 맥주를 뜻하고, 이 행사는 단체 건배를 제의하는 것이다. 저녁 9시20분. 필젠 마틴 박사 시장과 2명의 브루마스터, 그리고 체코의 유명 축구스타 파벨 하바스가 필스너 페스트를 손에 들고 단상에 섰다. 사회자가 “나 즈드라비(Nazdravi)”를 외쳤다. 나 즈드라비는 우리말로 “건강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순식간에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공장은 축제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이날 피보 행사에는 모두 5572명이 참석했다. 세계 맥주 축제 사상 ‘한번에 가장 많은 사람이 건배를 했다’고 한다. 필젠시 측은 이를 ‘기네스북’에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스너 페스트는 독일의 옥토버 페스티벌과 곧잘 비교된다. 옥토버 페스티벌에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축제기간이 짧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다. 규모가 큰 옥토버 페스티벌은 가건물을 지어 맥주를 먹는 장소를 마련한다. 필스너 페스트는 가건물이 아니라 작은 텐트를 만든다. 옥토버 페스티벌에서는 축구응원가·팝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지만 필스너 페스트에서는 체코 음악을 들어야 한다.

무질서 속 질서 보여주는 필스너 페스트
필스너 페스트만의 장점은 물론 있다. 옥토버 페스티벌이 가건물 등 실내 행사가 중심이라면 필스터 페스트는 자연 그대로의 맥주 축제다. 잔디에 앉아 언덕에 누워 맥주를 먹고 즐기기 좋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행사도 필스너 페스트의 자랑거리다.

필스너 페스트에선 축제장에 으레 있는 고성방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 축제에는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이 많지만 충돌하거나 추태를 부리는 취객이 전혀 없다. 쓰레기도 없다. 필스너 페스트가 수년째 진행하는 ‘클린 페스티벌’의 결과물이다. 필스너 페스트는 맥주잔 20개를 가져오면 필스너 우르켈 1병을 선물하는 행사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여기엔 체코인 특유의 자부심이 들어 있다. 필스너 페스트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클로부라는 “필스너 페스트는 필젠의 자랑이자 체코 최대의 맥주 축제”라며 “여기를 최고의 축제로 만드는 게 필젠 시민의 몫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필스너 페스트를 단순한 술 축제로 봐서는 곤란하다. 필젠시는 필스너 페스트를 통해 성장한다. 필젠시의 중심은 3차산업이다. 농업·임업·수질관리 등 1차산업은 2%, 2차산업은 12%에 불과하다. 3차산업 대부분은 맥주와 관련이 있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에는 2400여 명의 근로자가 근무한다. 이 중 600명은 필젠의 맥주 전문가다. 실제로 필스너 페스트가 열리면 필젠 맥주집은 대호황을 누린다.

필스너 페스트가 한창이었던 8월 26일 저녁 필젠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우살즈마누’를 찾았다. 손님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우살즈마누는 일주일에 1200L, 일주일에 9600병의 맥주를 판다. 12년째 우살즈마누의 사장을 맡고 있는 요제프 흘라바체크는 “필스너 페스트 기간에는 손님이 50%가량 증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입소문이 퍼져서인지 독일·오스트리아·미국에서도 손님이 온다”고 말했다.

맥주산업 덕분에 필젠의 경제구조는 안정적이다. 필젠시의 실업률은 6.4%로 전국 9.57%보다 훨씬 낮다.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만1873코루나(약 120만원)다. 체코 지역 중 4위다.

필젠시는 필스너 페스트를 통해 지역발전은 물론 도시 브랜드를 함께 올리려 한다. 시는 필스너 페스트를 주최하는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에 ‘필젠’이라는 도시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필스너 페스트는 기업이 열지만 명실상부한 도시축제다. 필젠 마틴 박사 시장은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와 시는 심리적 협업관계를 맺고 있다”며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가 성장하면 필젠시도 덩달아 크는 구조”라고 말했다. 박사 시장은 또 “2015년 유럽 문화도시에 도전하고 있는데, 필스너 페스트를 비롯한 맥주관광산업이 큰 도움을 줄 전망”이라고 말했다.

 


필젠시 전경.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필젠시의 관광전략이다. 시는 모든 관광전략의 중심을 맥주에 맞춰놨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의 양조장 투어는 필스너 페스트와 연계한 상품이다. 이 공장 밑에는 1839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맥주 저장고가 있다. 원래 9㎞에 달하지만 지금은 500m만 개방한 상태다. 160분 동안 양조장을 투어하면서 중세 맥주시대의 술 생산문화를 만끽할 수 있다. 여름에 가면 ‘시원해서’ 그만이다. 가격도 싸게 매겼다. 한 사람당 200코루나(약 1만3000원)다. 양조장 투어의 정점은 금방 제조한 필스너 우르켈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는 이를 필스너 우르켈의 청량감을 알리는 기회로 삼는다.


필젠시 동네 맥주가게에서 연결되는 지하 저장고. 
동네 펍(맥주가게)에서 연결되는 지하저장고 체험도 흥미롭다. 13세기에 만들었다는 지하 통로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길다. 총길이가 20㎞에 달한다. 현재는 750m만 개방했다. 두 사람 이상 함께 걷기 어려울 정도로 공간이 협소하지만 중세시대의 문화와 우물을 관람할 수 있다. 성인 1명의 가격은 70코루나(약 4550원)에 불과하다. 지하저장고 체험의 인기는 날로 높아진다. 2009년 1만8415명, 지난해에는 2만734명이 방문했다. 현지 가이드 일로나 페트로바는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은 50%가량”이라고 했다.

체코의 작은 도시 필젠은 맥주 하나로 컸다. 아니, 크고 있다. 지금은 체코와 일부 유럽 지역에서만 ‘필젠’하면 ‘맥주’를 떠올리지만 언젠가 전 세계가 필젠의 맥주에 열광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그럴 만한 콘텐트가 있을까. 박사 시장에게 “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다. 그는 답을 얼버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이 생각나서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박사 시장만 그런 게 아니었다. 똑같은 질문을 체코인에게도 던졌다. 답은 비슷했다. “글쎄요. 뭐 하나 콕 집어서 말 못하겠어요(대학생 카트리나).” “박지성, 북한, 한국 기업들?(레스토랑 매니저 페트로). 특징을 말하기 어렵네요.”

한국은 장점이 많지만 콕 집어 내세울 만한 킬러 콘텐트가 없다. 필젠 하면 맥주가 떠오르듯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한번 만든 콘텐트를 오랫동안 유지해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스너 페스트는 올해로 169번째 열렸다. 100년 하고도 69년 똑같은 축제가 열린 것이다. 이게 답이다.

 

■ 박스 인터뷰 | 필젠 마틴 박사 시장
“필젠 하면 맥주 떠오르는 시대 올 것”



“나 즈드라비(Nazdravi·건강을 위하여).” 8월 26일 밤 9시. 체코 최대의 맥주 축제 필스너 페스트의 백미 ‘피보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 연단에는 필젠시를 대표하는 4명의 인사가 섰다. 필젠시의 마틴 박사(37) 시장도 그곳에 있었다. 박사 시장은 23명의 체코 시장 가운데 두 번째로 젊다. 체코 시장의 평균 연령은 50세다. 그는 체코를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체코의 미래를 짊어질 정치인으로 주목 받는다. 그는 “세계 최고 전통의 맥주 축제인 필스너 페스트를 통해 핀젠시의 브랜드도 함께 올리겠다”고 말했다.
박사 시장과의 인터뷰는 필스너 페스트가 공식 개막되기 직전인 8월 26일 오후 4시에 가졌다. 더운 날씨를 화제 삼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날씨가 무척 덥다. 오늘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다.
“원래 체코는 여름철 3~4주만 덥다. 올해는 이상하게 덥다. 체코도 이상기후에 시달리는 것 같다.”
맥주 축제를 하는 데는 제격이지 않겠는가. 더우면 맥주가 더 시원할 테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필스너 페스트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필젠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필스너 페스트는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하는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에서 주최하는 행사다. 필젠시는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에 도시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시 차원에서는 행사 캠페인을 하고 해외 각국의 웹사이트에 관련 정보를 전달한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에 금전적 지원은 하지 않는가.
“시의 재정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다. 우리로선 지원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광고금액은 일부 후원한다.”
얼마인가.
“(웃으며) 숫자가 필요한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없다. 사실 필젠시로서도 한 기업을 후원하는 게 부담일 수 있다.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을 잘 고려해 후원한다.”
지원책이 생각보다 세지 않다.
“그렇게 봐선 안 된다. 필젠시는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를 존중한다.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가 생산하는 필스너 우르켈 덕분에 필젠의 브랜드도 동반 상승한다. 우리는 마음을 터놓고 도울 길을 찾는다.”
심리적 협업관계라고 보면 되는가.
“맞다. 그 표현이 적절하다. 필젠시와 필젠스키 프레즈드로이는 심리적 공감대가 있다.”
필스너 우르켈이 필젠에서 생산되는 게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필스너 우르켈의 고향이 필젠이라는 것은 필젠시로선 선물과 같다.”
필스너 페스트를 통해 필젠이 추구하는 목표는 뭔가.
“2015년 유럽 문화도시에 도전한다. 필스너 페스트를 비롯한 맥주 관광산업이 큰 도움을 줄 거라 믿는다.”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성장하려면 구체적인 콘텐트가 있어야 한다.
“맞다. 아까 선물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지금은 유럽 지역에서만 필젠 하면 맥주를 떠올리겠지만 앞으로 전 세계가 필젠 맥주에 열광할 거다.”
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삼성, LG, 현대차 등 기업?”
이미지를 물어봤다.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나는 지리와 역사를 전공했다.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게 아쉽게도 없다.”
한국 하면 떠오를 만한 콘텐트가 있어야 할 듯하다.
“물론이다. 무엇이든 상징이 있어야 한다. 체코 하면 필젠이 떠오르듯 말이다(웃음).”


필젠(체코)=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