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 ‘말 산업’ 다각화 고삐 죄고 채찍질
경마장이 달라졌다. 경기도 과천 서울경마공원은 이제 이름처럼 완벽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관중석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욕설이 난무하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지하철에서 내려 경마장으로 향하는 길부터 금연거리다. 누군가 무심결에 담배에 불을 붙이면 다른 경마팬이 나서 “담배는 지정된 장소에서 피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금연 문화가 정착됐다. 돗자리를 깔고 경마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시설도 갖췄다. 자연스럽게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젊은 커플이 늘었다. 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도 마련했다.
변화를 향해 달리는 한국마사회에 채찍을 더하는 이가 있다. 장태평(64) 한국마사회장이다. 그는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에서 예산과 세제 업무를 두루 거친 경제 관료 출신이다. 취임 1년이 넘은 시점에서 마사회의 많은 것을 바꿔나가고 있다. 장 회장은 “많은 변화에도 경마는 사행성 산업이라는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한국의 말 산업과 레저를 선도는 기업으로 거듭나기위해서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권 판매 비중 낮출 계획
그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사업의 다각화다. 그동안 경마에만 편중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직접 즐기는 스포츠인 승마의 활성화, 말의 해외 수출, 승용 말 사육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경마공원 관람대 컨벤션홀을 활용해 웨딩과 전시 사업도 시작했다. 경주가 없는 평일(월~금요일)유휴 시설에 대한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 장소 대관을 위한 영업활동을 적극 펼친다.
말을 캐릭터로 한 상품의 개발과 판매에도 힘쓴다. 그는 “전체 매출의 98%가 마권 발매액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마사회의 수익구조가 얼마나 단순하고 편중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며 “수익의 절반 이상을 경기장 내 식음료 판매와 스폰서로 올리는 선진국형 사업으로 탈바꿈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마권 발매액 비중을 70%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게 목표다.
“경마공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가 될 것입니다.” 장 회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와 강원 춘천 남이섬이었다. 경마공원을 테마파크로 꾸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경주로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조각물과 놀이기구를 설치해 온 가족이 365일 찾을 수 있는 공원으로 가꾸고 있다. “서울경마공원 근처에는 과학관과 서울랜드·국립현대미술관 등 좋은 관광지가 많습니다.
위치와 교통이 좋아 서울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할 수도 있죠. 숙박시설을 만들고 관광특구화하면 중국과 아시아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될 것입니다. 경마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22년 국제경마대회 개최 목표
이 같은 변화를 위해 조직도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말 근무 성과에 따른 차등 연봉제를 시행키로 노조와 전격 합의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과거의 마사회가 아니다. 또 공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미래적략실’이라는 기업 마케팅 전담 부서도 만들었다.
직원들에게 항상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세계적으로 경마는 사양 산업의 길을 걷고 있다. 카지노·게임·스포츠 등이 인기를 끌면서 점점 경쟁에서 밀리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결국엔 도태될 것”이라는 게 장 회장의 생각이다.
장 회장의 최종 목표는 202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경마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현재는 일본과 호주·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와 경마 교류를 시행하고 있지만 기수들의 교류에만 그치고 있다. 한국 경마의 국제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 성과물이 올 하반기에 열리는 ‘한·일 국제경마교류전’이다. 9월에는 일본 지방경마회 속 경주마 세 마리를 초청해 서울경마공원 소속 경주마 11마리와 승부를 겨루고, 11월에는 한국의 경주마 세 마리가 일본에서 경기를 치른다.
이른바 경마 한일전이 펼쳐지는 셈이다. 장 회장은 “이번에 펼쳐질 교류전의 상금(2억5000만원)은 크지 않지만 국제경마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경험을 쌓는다는 의미가 있다”며 “한국 경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더 큰 규모의 국제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의 켄터키더비, 호주의 멜버른컵, 일본의 재팬컵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세계적 수준의 대회가 2022년 한국에서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15개월 동안 장 회장은 한국마사회의 많은 것을 바꿨다. 하지만 아직 성에 차지않는 것이 있다. 경마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다. 다른 사행산업이나 불법으로 행해지는 도박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경마는 배후 산업이 존재하고 경제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다른 사행산업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불법 도박 시장이 국내 전체 사행산업 규모의 3배에 달한다”며 “제도권 사업의 규제를 줄이고 불법 도박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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