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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산업에도 창조 바람이 거세다. 단순히 보고 듣고 먹는 여행에서 벗어나 색다른 요소를 결합한 ‘창조관광’이 시선을 끈다. 관광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시장에는 활기를 불어넣는 관광벤처가 관광산업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기존 관광에 스토리·예술·레저·정보기술(IT)·환경·의료 등 다양한 콘텐트를 융합해 부가가치를 높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관광벤처도 속속 등장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이 1100만명을 넘었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 20위권, 아시아 7위권의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젠 관광시장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모색할 단계다. 관광객이 지나간 자리에 돈이 많이 남아야 한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정성호(42)씨 가족은 토요일인 4월 13일 오전 8시에 집을 나섰다. 두 시간 남짓 운전해 도착한 곳은 강원도 춘천 송암동 의암호. 정씨는 이곳에 조성된 ‘물레길’에서 카누를 타기 위해 일주일 전에 홈페이지로 예약을 마쳤다. 잠시 후 정씨 가족과 마찬가지로 미리 예약한 이용객 20여명이 운영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안전교육 받고 노 젓는 기술을 배웠다.
오전 10시 30분, 정씨와 아내, 아들 지우(7)군을 태운 5.1m 길이의 날렵한 카누가 물레길에 둥둥 떠올랐다. 세 사람은 1시간 동안 붕어섬 주변 3km 코스를 돌며 천혜의 자연을 만끽했다. 엄마·아빠 사이에 앉은 지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한 가족이 1시간 동안 카누를 빌려 투어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3만원(성인 2인 기준). 정씨는 “직장 동료로부터 춘천에 카누를 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여행을 계획했다”며 “마침 날도 따뜻하고, 적당한 비용에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춘천 의암호는 1967년 의암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춘천호·소양호와 맞닿아 있어 호수 가운데 붕어섬과 중도가 생겼다. 물살이 잔잔하고 풍광이 좋아 여름에는 수상레저 경기가 곧잘 열린다. 그러나 교통편이 불편하고, 별다른 여가 시설이 없어 평소엔 인적이 드물다. 그런 의암호에 2011년 카누를 탈 수 있는 물레길이 조성되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업 첫해 2만5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지난해에는 3배 이상인 8만여명이 물레길을 다녀갔다. 물레길을 기획·운영하는 임병로 퓨레코이즘 대표는 “빼어난 자연환경을 그냥 두기 아까워서 자연 친화적인 카누 관광사업을 생각했다”며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수상경기 레저건물을 빌려 카페와 교육시설을 만들고, 카누를 대여하니 지역 명소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물레길처럼 기존 자연자원이나 문화에 창조성을 더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관광벤처 사업이 눈길을 끈다. 이른바 ‘창조관광’으로도 불리는 관광벤처 사업은 새로운 콘텐트를 개발해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 콘텐트에는 제약이 없다. 관광산업에 농업·환경·의료·교육·예술·레저·IT 등 다양한 영역을 접목해 융합·복합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관광상품보다는 새로운 걸 찾고 경험하려는 관광객이 늘면서 관광산업에서도 벤처정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2007년에 선보인 후 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 제주도 올레길도 대표적인 창조관광 사례다. 215km(12코스)에 이르는 오솔길을 관광 상품화한 아이디어는 주변에 관광명소나 화려한 리조트 없이도 많은 관광객을 매료시켰다. 올레길이 인기를 끌면서 지리산 둘레길, 강화도 나들길, 철원 한여울길 등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개념의 도보관광 코스가 개발됐다. 이에 따라 국내 여행의 지형이 달라졌다.
지역민이 나서 현지 특화 관광벤처 세워지역민이 직접 나서 관광벤처를 시작한 사례도 있다. ‘슬로시티’로 알려진 전남 신안군 증도에는 주민들이 ‘길벗’이란 여행사를 만들어 갯벌 생태와 염전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주민들이 직접 가이드를 자청해 관광객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전한다.
강원 평창군 용산리 주민들은 ‘용산주민 주식회사’를 설립해 마을 인근에 개발된 알펜시아 리조트로부터 용역을 받아 스키장 리프트 운영과 제설·안전·스키교육 등을 맡았다.
이 사업을 통해 주민 40명이 1억5000만원(겨울 석 달 기준)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전남대 학생들이 창업한 ‘섬여행학교’는 전남지역 2200여 개에 달하는 섬의 자연환경을 토대로 특별한 섬 여행상품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이처럼 성공적인 관광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는 자연환경은 많지만 실제로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에서는 아직 관광벤처라는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관광 관련 창업을 준비하는 엄태성(32)씨는 창업 지원을 받기 위해 벤처투자 상담을 받고 창업보육센터에도 문의했지만 번번히 거절 당했다. “투자자들은 제조업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투자하게 마련인데 관광은 무형의 자원이어서 투자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관광벤처는 전례가 드물고, 관광 자체를 산업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있어 창업 지원을 받기 어려워요.”
그러나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관광산업의 경제적 가치는 다른 산업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관광산업 매출 10억원당 유발되는 취업자 수는 52.1명으로 제조업의 2배, IT 산업의 5배 수준이다. 지난해 외래 관광객 1100만명을 돌파하면서 관광벤처 활성화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관광과 연관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관광 선진국보다 작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관광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9%대로 스페인(15.2%)·싱가포르(11.3%)·이탈리아(10.3%)·프랑스(9.7%)는 물론 중국(9.3%)·미국(8.6%)보다 작았다.
관광 사업체는 1만2755개(2009년)에서 1만4281개(2010년)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체가 전통적인 방식의 여행사나 숙박업소다. 새로운 콘텐트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강신겸 전남대 관광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류 열풍, 국제 회의 유치 등으로 관광객이 늘었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갈 길이 멀다”며 “10년 전이나 별반 다를 게 관광상품과 콘텐트, 낙후된 인프라와 서비스로는 관광대국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적 창조산업인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끌어들여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한다”며 “관광 분야에서도 창의성을 생산 요소로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광 선진국 관광벤처 육성에 총력국내에서 관광벤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1년부터 관광사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으로 시작한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이 관광벤처를 육성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이 공모전은 관광 분야의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예비 창업자 그룹과 관광 분야 창업 5년 이내의 기존 사업자 그룹으로 나눠져 심사를 한다. 총 상금 8억800만원인 이 공모전에서 우수사업으로 선정되면 2000만~3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실제 사업화 과정을 위한 창업 전문교육에서 판로개척에 이르기까지 원스톱 창업지원도 받는다.
시행 첫해 160여건이 응모했고, 지난해 제 2회 대회에서는 1100여건의 사업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중 지난해까지 총 90개(2011년 10개, 2012년 80개)의 관광벤처가 선정됐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들 사업이 어떤 분야와 접목했는지에 따라 시설기·IT·아이디어 기반형으로 나눠 지원한다. 이 중 68%에 달하는 64개 업체가 실제 창업에 성공했으며 현재 사업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제 1회 창조관광사업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블링킹 투어 플래닛 서비스’는 데이터 로밍이 필요 없는 관광 내비게이션이란 서비스를 내놓았다. 사용자가 언제, 어디로 여행할지 입력하면 일정을 자동으로 구성해 주고 이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목적지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한다. 관광안내센터와 주요 기차역·지하철역·고궁 등에는 태블릿PC를 설치해 데이터 로밍을 하지않아도 현지 여행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수익은 하드웨어 납품·판매와 관리·운영·애플리케이션 광고 등에서 얻는다. 이 업체는 최근 해외 수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약 1억4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관광객이 직접 소금을 생산하고 수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경기 안산 대부도 ‘동주염전 체험’ 사업은 창조관광사업의 지속적인 지원 덕에 전년 대비 5배가 넘는 관광객을 모아 인근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을 줬다.
이미 해외에서는 관광벤처가 관광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각광 받는다. 여행지나 일정과 관련된 정보를 하나의 일정표로 통합하고, 방문 지역의 날씨·방향·지도 등을 제공해 스마트폰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한 미국의 ‘트립 잇’은 2009년 미 타임지 선정 최고의 웹사이트 50선에 올랐다.
2003년 미국에서 출시된 ‘보케이션 베케이션’은 평생 꿈꾸던 직업을 체험해보는 기회를 관광 아이템으로 정했다. 아나운서·소믈리에·디자이너 등 200여 개의 직업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600~2000달러에 이르지만 관광객이 몰린다. ‘공유경제’ 모델로 유명한 ‘에어비앤비’ 서비스도 대표적인 관광벤처다. 빈방을 빌려주는 숙박의 개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만나 인터넷을 통해 방을 예약할 수 있는 소셜 숙박사이트로, 사업 시작 5년 만에 1000만 넘는 예약 건수를 달성했다.
관광 선진국들은 창조관광의 성장 가능성을 꿰뚫고 이미 관련 기업 육성책을 펼치고 있다. 호주와 영국 웨일스 정부는 각각 관광투자지원제도(TISS)와 관광품질프로젝트(TQUAL)을 통해 관광벤처의 성장을 돕는다.
강신겸 교수는 “관광벤처 사업은 콘텐트 개발로 관광 경쟁력을 강화하고, 관광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새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평했다. 그는 “이제 한국 관광도 창의적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로 융합·복합형 관광상품을 개발해 관광 수요 다변화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