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버려지는 염전에 스토리 입히니 북적북적 관광이 스토리를 만나면

도일 남건욱 2013. 4. 26. 16:28


버려지는 염전에 스토리 입히니 북적북적
관광이 스토리를 만나면
주어진 자연환경을 관광상품으로 개발 … 브랜드·마케팅·프로그램 개발이 성공 요인


“자, 모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벽돌을 잡고 힘을 주세요.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 주세요. 사진을 찍고 나서 벽돌을 들면 치즈가 짠~ 하고 나타날 거예요.” 해설자의 말에 옆에 있는 통역사가 말레이시아어로 통역을 한다. 말레이시아 관광객 30여명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었다. 설명에 따라 간단한 작업 몇 번을 거쳤는데 30분만에 뚝딱 치즈가 완성됐다. 치즈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들었다.

해설자의 이야기 곳곳에는 말레이시아어도 섞였다. 말레이시아 관광객을 위해 특별히 익힌 속담이나 유행어다. 완성된 치즈는 와인·주스·과자와 함께 그 자리에서 맛을 본다. 프로그램을 체험한 고(Goh·59·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치즈를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가격도 비싸다”며 “그런 치즈를 내 손으로 만들고 맛도 볼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 해설을 진행한 이는 ‘바람마을 치즈체험’의 최수연(58) 대표다. 2006년부터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에 치즈 체험장을 운영했다. 그는 “농한기에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지금은 한 해 5만명 넘게 찾는 훌륭한 관광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아담한 규모의 일반적인 체험장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경영기법이 숨어 있다. 최 대표는 식품공학을 전공한 남편 임근성씨와 수 개월에 걸쳐 치즈 만들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마케팅 방법을 연구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임실 치즈 마을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단순히 치즈 만들기만 알려주지 않고 구연동화처럼 치즈의 유례나 관련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들려줘요. 사람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나 웃음을 유발하는 멘트도 넣었죠. 체험이 끝나면 직접 맛을 볼 수 있게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커티즈’라는 치즈를 사용합니다. 이 치즈도 굳기까지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의 전통 두부 틀을 이용해 빠르게 굳히는 법도 개발했죠.”

동화 들려주듯 신나는 프로그램 진행

2009년에는 2호점도 냈다. 강원도 평창 바람마을 근처 알펜시아리조트에 ‘치즈스토리’라는 체험장을 열었다. 치즈스토리는 최수연씨의 아들 임지환씨가 대표다. 점장과 매니저는 임씨의 동네 친구들이다. 치즈스토리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한다. 프로그램 중간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퀴즈를 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와플이나 아이스크림도 만든다. 바람마을 치즈체험장은 단체나 외국인 관광객 위주로, 치즈스토리는 가족 단위 투숙객 위주로 마케팅을 펼친다. 지난해 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임 대표는 “가까운 강릉에 커피박물관이 있고, 용평에 스키장과 리조트가 있다”며 “이들과 연계해 종합체험형 관광상품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바람마을에는 치즈체험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 자체가 체험관광 브랜드다. 바람마을은 횡계IC에서 대관령 산자락을 따라 자동차로 15분을 달리면 나오는 동화 같은 마을이다. 초록색 풀이 자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고 삼각지붕의 예쁜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의로운 사람들이 모야 사는 곳’이라는 뜻의 의야지(義野地) 마을이다. 

2006년 농촌체험마을로 꾸미면서 ‘바람마을’로 이름을 붙였다. 풍력발전 시설이 곳곳에 있을 정도로 바람이 많은 마을이라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들 귀에 쉽게 익고 아이들도 좋아할 수 있도록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강원도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우유를 이용한 치즈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감자를 이용한 포테이토 피자(감자전) 만들기, 마을 주변을 돌아보는 4륜 오토바이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계절에 따라 양 먹이 주기나 자연 그대로를 이용한 눈썰매도 즐길 수 있다. 지난 해 관광객만 9만2000여명이다. 강원도 지역의 체험 마을 중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각각의 사업에 마을 주민들의 지분이 골고루 들어있다. 치즈체험장과 눈썰매장의 주인이 다르다. 4륜 오토바이는 마을 청년회에서 직접 운영한다.


경기도 천일염의 우수성 알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동주염전은 경기도 지역 염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0년부터 염전에서 직접 소금을 만드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열어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경기도 천일염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는 효과도 덤으로 얻었다. 2011년 502명이 동주염전을 찾았고, 지난해에는 3091명으로 그 수가 급증했다. 4월 20일 개장을 앞둔 올해는 벌써 500여명의 예약이 끝났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체험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까지 경기도 지역의 상당수 염전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형 태풍을 수 차례 겪으면서 시설이 망가진 곳이 많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풍부한 전라도 지역 소금에 밀려 판로 찾기도 쉽지 않았다. 경기도 천일염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다. 그 사이 문을 닫은 곳도 많다. 1980년대 200곳이 넘던 염전이 지금은 겨우 20여개만 남았다.

동주염전 역시 다른 염전들과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2009년 동주염전에 서울대 학생들이 찾아왔다. 학생들은 “전통 옹기방식으로 천일염을 생산하는 경기도 염전을 살려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경기도 천일염에 자부심이 강한 백재환 동주염전 사장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다. 동주염전을 찾은 학생들은 서울대 동아리 ‘인액터스’의 회원들이다. 인액터스는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사회공헌을 한다. 국내 대부분의 대학에 인액터스 모임이 있다. 

현재 서울대 인액터스 팀장 황경환(농경제사회학부 2년)씨는 “PVC 고무장판을 깔아 소금을 만드는 전라도와 달리 경기도는 전통 옹기 위에 바닷물을 받아 소금을 만든다”며 “칼륨·칼슘·마그네슘 등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도 좋다”고 말했다. “훌륭한 토산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경기도 천일염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됐다”는 게 황씨의 설명이다.

프로젝트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경기도 천일염에 대한 브랜드를 만들고, 포장을 새롭게 해 상품성을 높이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체험학습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염전에 소득을 일으키는 것이다. 투박한 포대에 담겨 20kg짜리 한가지만 있던 동주염전의 천일염은 아기자기한 포장에 3가지 종류의 제품(5·10·20kg)으로 팔린다. ‘자연을 담은 옹기 천일염’이라는 브랜드를 얻었다.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상승 궤도에 올라섰다. 

최지현(서울대 언론정보학과 3년, 휴학중)씨는 “초등학교 과학·미술 교과서를 분석해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최근 체험학습 과제를 의무적으로 내는 학교가 많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올해부터는 여행사와 연계해 더 많은 사람이 동주염전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나 환경은 하늘이 내려준다. 바람마을과 동주염전은 관광 벤처를 만들기에 적절한 환경 덕을 봤다. 하지만 이를 다듬고 연구하지 않았다면 성과를 낼 수 없다. 두 사업의 공통점은 자연이라는 좋은 재료에 뛰어난 스토리를 입혔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와서 놀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름의 의미도 부여했다. 한적한 시골마을과 사라져가는 염전이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