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CEO풍수학

“터가 나빠서 회사가 흔들려?”

도일 남건욱 2006. 1. 9. 13:10
“터가 나빠서 회사가 흔들려?”


立地 때문에 울고 웃는 대기업… “믿을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고”

글 이상재 기자 (sangjai@joongang.co.kr)




디지털 세상이라고 하지만 점술(占術) 역시 만만치 않게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선영(先塋)부터 사옥 터를 잡을 때, 혹은 주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때로는 컴퓨터 같은 분석보다 점괘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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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굴지의 대기업들이 ‘터’와 관련된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분식회계 사태 등으로 대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사옥이나 선영 터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지난 2002년 봄 손길승 SK그룹 회장실에 조금 낯선 보고서가 올라갔다. “최종건·종현 회장 선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건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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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에 있는 최회장 선영에 불길한 기운이 뻗치고 있어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을 답사했던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회 이사장은 “선영의 주변 환경이 풍수적으로 볼 때 많이 흉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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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정문의 방향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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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선영은 경기도 화성시 와우리에 위치해 있는데, 여기에는 고 최종건 창업회장의 묘를 비롯해 최회장 일가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1998년 작고해 화장을 치른 최종현 회장의 가묘(假墓)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회장 일가 선영 바로 50여m 앞으로 고속철도 공사가 한창이었고, 산등성이에서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한 터 닦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와우리(臥牛里)는 ‘소가 누워 있는 자리’라는 뜻인데 불과 2∼3년 만에 흉지로 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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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묘역 앞쪽의 터널을 통해 시속 3백㎞의 열차가 통과합니다. 이러면 결국 지기(地氣)가 흉하게 바뀔 수밖에 없지요. 소가 집을 떠나야 할 판입니다.”(고제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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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손회장은 “선영 이전은 가족의 문제”라며 개입을 주저했다. 최신원 SKC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 역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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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때부터 SK그룹은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로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이 구속되는가 하면, 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소버린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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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랜드마크인 LG 쌍둥이 빌딩도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이후 LG는 잘 되는 일이 별로 없다. ‘통신 3강’을 선언하면서 하나로통신 인수전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LG카드 사태로 LG투자증권까지 매물로 내놓으면서 금융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재계 2위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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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찬 풍수지리연구소장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20번지에 위치한 LG그룹 본사 터는 건물의 정문을 잘못 내는 바람에 흉터로 변했다”고 말했다. “건물 앞에서 보면 한강 물이 빠지는 형국인데, 풍수에서 물의 흐름은 재물의 흐름을 뜻합니다. 한강 물이 서해 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이를 잡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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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 “이웃 건물이 도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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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박소장은 정문을 바꾸면 반대로 물이 들어오는 형국이 되므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제희 이사장은 동관과 서관 중간에 ‘닻’처럼 대형 조각품을 설치하면 재물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이사장은 “여의도 모양이 배와 같아 닻을 세워 재물을 붙들어줘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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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터 때문에 웃는 회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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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계동 사옥을 떠나 양재동에 둥지를 튼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본사 이전 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경신하면서 지난해 매출 24조원에 순이익 1조7천억원을 올렸다. 현대차그룹은 매출에서 이미 재계 3위에 올랐으며, 올해는 자산 순위에서도 ‘빅3’ 자리를 넘보고 있다. 구씨·허씨 간 지분 분리가 끝나면 LG를 제치고 재계 2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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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려한 성적표는 양재동 터에서 나온다고 한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본사는 길지로 꼽힌다. 고제희 이사장은 “주산인 구룡산에서 서진한 내룡(來龍)이 땅속에서 지맥을 감춘 채 염천곡을 만나 생기를 응집시킨 터”라며 “일단 재물 운이 좋은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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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방향도 좋다. 박민찬 소장은 “사옥의 정문은 동쪽이며 건물은 남향으로 길한 방향을 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문 앞 코트라 건물의 삼태기 형상은 마치 현대차를 감싸안고 재물을 모아주는 듯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서쪽의 기운이 약한데 이를 고속도로가 막아 줘 운도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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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역시 터를 잘 잡았다고 한다. 우선 삼성 본관을 가운데 두고 태평로에 좌우로 선 태평로빌딩과 삼성생명빌딩이 조화롭다는 것.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건물도 형체가 안정되고 우아할 뿐만 아니라 좌우의 빌딩이 자연스럽게 좌청룡·우백호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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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떠도는 이런 풍수설에 대해 관계자들은 흥밋거리 이상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SK 관계자는 “선영과 사옥, 오너의 사주를 통해 기업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기업이 움직이는 것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기업의 움직임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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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풍수설을 ‘플러스 알파’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사옥 탓으로 돌려 풍수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런 운도 있구나’ 하는 플러스 알파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업 입장에서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믿을 수도 없고, 지나쳐버릴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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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호수 727 | 입력날짜 2004.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