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CEO풍수학

서울 종로5가 삼양사 본사 건물…丁자형 건물로 人和를 뜻해

도일 남건욱 2006. 6. 3. 03:23
서울 종로5가 삼양사 본사 건물…丁자형 건물로 人和를 뜻해
“이유 있는 인재 중시 경영”
정(丁)자형 혹은 T자형 건물은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정신을 반영한다. 사진은 서울 종로5가 삼양사 본사 건물.
「맹자」에 이런 말이 있다.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요,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는 뜻이다.

맹자가 공손추와 나눈 이 대화의 요지는 ‘군자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는 것. 예컨대 장수가 적을 공격하는 시간은 바로 하늘의 때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시점이다. 적을 공격해도 성(城)이나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리의 이로움을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성이나 고지를 차지하고 있던 병력이 무기나 식량이 풍부함에도 후퇴하는 것은 지리의 이로움보다는 바로 병사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 기업의 CEO들이나 고급 관료들이 즐겨 좌우명으로 삼는 격언이기도 하다. 인력 구조조정만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은 깊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풍수학에서도 이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좇아 종종 인용되고 있다. 지리학을 너무 광신하지 말라는 경고일 것이다. 아무튼 요즘같은 시대에는 인화(人和)가 기업이나 국가가 지향해야 할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인화를 건물 외모에 반영하는 형태가 있다. 한자로 표현하자면 ‘정(丁)자형’이고 영어로는 ‘T자형’ 건물이 그것이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이 정자형 건물은 조선조 왕릉 앞에 있는 정자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정자각은 왕이 선대 왕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은 정자각이다. 이 정자각이 현대 건물에서는 현관 개념으로 나타났다. 현관은 주인이 손님을 맞는 장소다. 현관 안은 주인의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 정부 요인의 공관에 이 정자형 현관이 있는 것도 같은 의미다.

이런 공관의 개념을 넘어 건물 전체를 정자형으로 구현한 건물이 서울 시내에 있다. 종로5가에 있는 삼양사 건물이다. 동서로 앉은 일(一)자형의 본채에 남북으로 1자형의 건물을 덧붙였다. 한자 정자형 건물이다. ‘갑을병정…’의 천간 정자는 풍수에서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 기업에서는 사원들의 안녕과 발전을 뜻한다고 하겠다.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이런 모양의 건물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분명 사원, 곧 인재를 중시하는 이 회사의 경영지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왕에 예로 들었으니 좀 더 칭찬해 보자. 이 건물 높이 11층은 서울 사대문 안 빌딩에서 교과서적 전범이다. 광화문에 있는 문화광관부와 미국 대사관 퓜걋?8층인데, 굳이 풍수 이론이 아니어도 서울 시내 어디에서나 남산이나 인왕산을 볼 수 있는 스카이라인은 10층 내외다. 그 이상은 풍수적으로 봐도 음양의 조화가 깨지는 층수다.
그러나 삼양사 건물의 11층은 그 자체로 음양 배합(配合)이 되고 있다. 11은 10+1이다.

여기서 10은 완성을 의미하고 1은 새로운 출발을 상징한다. 여기에다 정자형 건물을 만들기 위해 본채에서 달아낸 건물은 3층이다. 3은 삼재구족(三才具足), 천·지·인이 온전히 갖춰져 있음을 뜻한다.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삼양사의 의지가 이 건물에 강하게 배어 있다.
사진 지정훈 (ihpapa@joongang.co.kr [762호] 2004.11.0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