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商術에 고객은 포로가 된다
은행의 비밀을 벗긴다 은행도 이익 내고 돈 벌려는 기업 … 소비자 스스로 똑똑해져야 서비스 제대로 받아 |
15,017,000,000,000원. 2007년 한 해 동안 은행이 벌어들인 수익이다. 이 중 상당액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이자 및 수수료 수익이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은행에서 쓴 비용만큼(이자+수수료) 돈을 벌었을까. 아마도 고개를 흔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히려 은행에 낸 비용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소비자 민원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을 잘 몰라서, 또는 잘 알려주지 않아 고객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코노미스트가 은행 상술의 비밀을 알아봤다. 개인들의 금융활동은 은행에서 출발한다. 어릴 적 용돈을 모으고, 사회에 나와 월급을 모으고, 결혼 이후 생활 및 노후자금을 모으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은행에서 자기 이름의 통장을 만드는 일이다. 그만큼 은행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금융서비스 창구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은 은행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곤 한다. ‘은행에서 내게 꼭 맞는 상품을 찾아주겠지’ ‘은행인데 아무렴 알아서 잘 계산했겠지’ ‘은행이니까 돈을 잘 관리해 주겠지’ 등등. 과연 그럴까. 은행은 사람들의 신뢰에 걸맞은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가 매우 강하다. 일부 사람은 은행을 공익단체 또는 반관반민으로 혼동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은행은 공익단체도 비영리단체도 아니다. 은행도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상품(금융 서비스)을 팔아 많은 이익을 내려는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다. 많은 돈을 벌어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은행의 존재 이유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 내놓는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는 고객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적인 고려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바꿔 말하면 은행만 믿고 따라가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손해 보며 물건을 파는 기업이나 장사꾼은 없지 않은가. ‘꺾기 판매’에 비용 떠넘기기도 최성우 포도에셋 재테크팀장은 “직·간접적으로 오랜 세월 굳어진 은행이란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들은 은행에서 내놓은 금융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은행이니까, 은행인데…’라는 오해에서 먼저 벗어나야 제대로 은행을 이용해 돈도 벌고 손해도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K씨는 최근 화가 치밀어 주거래 은행을 바꿔 버렸다. 문제의 발단은 펀드였다. 지난해 초 K씨는 “연간 30%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은행 창구직원의 말만 믿고 결혼자금 2000만원을 중국펀드에 투자했다. 창구직원은 펀드에 가입하면 대출금리도 0.5%포인트가량 깎아 준다며 투자를 부추겼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로 중국 증시가 추락하면서 K씨가 투자한 펀드에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K씨는 펀드 손실이 점점 커지자 수차례 은행 창구직원을 찾아가 환매 상담을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조금만 참으면 된다”였다. 결국 K씨는 결혼비용 마련을 위해 펀드를 환매했고, 1년 만에 원금의 절반가량 손해를 보게 됐다. 정작 K씨가 화가 난 것은 펀드 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펀드를 환매하자 대출금리 혜택도 사라진 것이었다. 펀드 투자로 손해를 본 데다 이자비용까지 늘어나게 된 셈이다. K씨는 “10년 가까이 거래한 은행인데 그렇게 소홀하게 대접할 줄 몰랐다”며 “고객은 손해를 봤는데도 은행은 펀드 판매 수수료에 이자까지 챙겼다는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거래 은행을 바꿔 버렸다”고 말했다. K씨의 경우는 ‘은행이니까~, 은행인데~’라는 잘못된 오해 때문에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K씨처럼 은행의 ‘꺾기 판매’(대출과 함께 펀드·보험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로 손해를 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SC제일·한국씨티은행 등 7개 시중은행과 1개 지방은행을 상대로 부문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적발됐다. 이들 8개 은행 157개 지점에서 꺾기 판매는 무려 358건에 달했다. 표본조사에서 지점당 2건 이상 발생한 것이다. 전국 은행 지점 수가 5000개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꺾기 판매 사례는 최고 1만 건이 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꺾기 판매 행위처럼 은행이 수익을 내기 위해 고객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파는 경우는 많다. 심지어 고객이 상품구조를 잘 모른다는 빈틈을 이용해 비용을 전가하거나 추가 이득을 챙기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주택담보대출의 근저당설정 비용이다. 그동안 은행은 근저당설정 비용 전액을 대출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해 왔다. 은행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고객이 주택을 담보로 1억원을 빌리면 보통 62만원가량을 근저당설정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다. 2006년 개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은행에 지급한 근저당설정 비용만 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대출로 발생하는 부대 비용은 은행이 지급해야 한다. 즉 대출로 이자(수익)를 챙기는 은행이 근저당설정 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비용증가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근저당설정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해 왔다.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수익자 원칙에 따라 근저당설정 비용을 은행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금리인하 등 은행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혜택도 그 이면에는 그만한 대가가 반드시 존재한다. 손해 보며 장사하는 기업이 없듯이 은행의 금융상품이나 서비스에도 공짜는 없는 것이다. 비단 은행뿐만 아니다. 증권·보험 등 여타 금융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접수되는 금융 관련 민원들을 살펴보면 소비자들은 상품약관이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은행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소비자들은 금융기관도 영리기업인 만큼 고객에게 꼭 필요한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가 모르면 그만큼 손해 본다 은행에 대한 또 다른 오해 하나는 은행 창구직원들이 “나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은행 창구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이 같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은행 창구직원들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고객을 상대한다. 한 고객을 상대하는 시간은 대개 길어야 십여 분에 지나지 않는다. 창구 한쪽에 설치된 전문 상담직원이라 할지라도 길어야 1~2시간이 전부다. 은행 창구직원이 이 짧은 시간에 고객의 사정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은행에서 판매하는 적금·보험·펀드 등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 이마저도 매일 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단적인 예로 시중은행에서 판매하는 펀드만 매년 50가지가 넘는다. 고객 응대에도 바쁜 은행 창구직원들이 매일 새로 나오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모두 숙지하고 있을까. 시중은행 상품개발팀 관계자는 “한 달에 2~5개 정도의 신상품이 개발되고 창구에서 팔린다”며 “이 때문에 직원들이 모든 상품을 숙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에 이용당하지 않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내놓는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본인에게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정도는 소비자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신문이나 금융 관련 서적 등을 통해 금융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최성우 팀장은 “개인들은 금융거래에 있어 알게 모르게 ‘이용’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 금융활동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만큼 이제 소비자 스스로 현명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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