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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양극화 꼭짓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다

도일 남건욱 2011. 1. 17. 14:11

건강 양극화 꼭짓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다

한겨레21 | 입력 2011.01.14 18:10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사망률 극과 극' 강남·분당과 괴산·신안의 진료횟수·의료인력 2~4배 차이…


낙후 지역의 보건소 예산은 오히려 줄어 격차 키워

한국인의 생사여탈은 무엇이 관장하는가. 한두 단어로 추려내기 어렵다. 생사가 신의 섭리를 벗어난 지 오래라는 사실만 명확하다. 충남 괴산군과 전남 신안군, 서울 강남구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를 비교해 살폈다.

보건복지부 용역보고서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증진 전략 및 사업개발'(2007)을 보면, 괴산과 신안의 표준화 사망률이 전체 245개 시·군·구 가운데 4위와 8위로 최상위권을 이룬다. 반면 분당과 강남은 245위, 244위로 나란히 최저를 구성한다. 괴산에서 10만 명당 한해 649.98명이 숨질 때, 분당에선 335.03명이 숨을 거둔 셈이다. 괴산군민에겐 갑절이며, 분당구민에겐 반절이다. 극과 극의 사망률을 보이는 두 지역군을 '해부'해보았다.

농어촌 신체손상 도드라져

첫 번째 단서는 '병'에서 구해질 만하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이하 건보공단)의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를 분석해보니, 두 지역군 주민들이 자주 입원·치료하는 병부터 크게 달랐다. 괴산군민의 질병으로 신안군민이 아팠고, 분당구민의 질병으로 강남구민이 입원했다.

2009년 괴산·신안 군민을 가장 많이 입원시킨 병(건강보험 적용·암 제외)은 폐렴이었다. 괴산의 경우, 백내장·수정체 장애, 기타 배병증(척추 관련 질환), 골절, 치핵(치질 관련), 탈구·염좌·긴장, 요추·기타 추간판 장애, 기타 신체손상이 뒤를 이었다. 신안은 탈구·염좌·긴장, 기타 배병증, 백내장·수정체 장애, 요추·기타 추간판 장애, 골절, 기타 신체손상 순이었다.

강남과 분당은 상위 5개 입원 사유가 정확히 겹쳤다. 백내장·수정체 장애, 출산 관련, 단일 자연분만, 치핵, 임신·분만 합병증 순으로 자주 입원했다. 강남에선 장·복막 기타 질환, 기타 심장질환, 골절이, 분당에선 골절, 폐렴, 장·복막 기타 질환이 뒤를 이었다.

농어촌 고령화에 따른 뻔한 차이를 제외하면, 가장 도드라지는 건 지방에서 유독 악명을 떨치는 '신체손상'이다. 베이고 찢기고 삐고 멍들고 부러진다. 반면 강남보다 부의 분포가 고른 분당의 8번째 입원 사유는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와 임상 및 검사상 이상 소견'이다. 김명희 예방의학전문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는 "분당·강남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위중한 병들이 우선하고 있다"며 "신안·괴산의 경우 손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농어산촌의 주거·노동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환경'이 다르면 종양도 다르다. 괴산에선 위암-대장암-폐암 순서(건강보험 적용)로 진료받은 이가 많았으나, 분당은 유방암-위암-대장암 순이었다.

일상의 질병이나 암이 생과 사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 허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의 '헬스피플 2010'은 사망률을 쥐흔드는 요인을 생활 환경·습관 40%, 유전적 요인 30%, 주변 환경·자연 20%로 정리한다. 의료환경은 10%다. 이규석 건강복지정책연구원 대표는 "(건강 불평등은) 지역 간 의료 인프라의 차이라기보다, 병원을 이용하고 건강관리를 할 형편·여유·습관이 미치는 탓이 크다"고 말한다. 결국 건강 불평등이 경제력의 차이에 가닿는 까닭이다.

건보공단의 통계치를 분석해보면, 신안·괴산 주민이 2009년 한 해 진료(건강보험 적용)받은 평균 횟수는 0.96회, 1.09회다. 분당·강남은 2.56회, 4.1회에 달했다. 격차가 2~4배에 이른다.

괴산에 사는 김정만(가명)씨. 방 두 칸짜리 자잘한 한옥엔 그와 아들 진호(가명)씨뿐이다. 아버지는 천식·고혈압·관절염을 앓고 있다. 부자는 한방에서 먹고 잔다. 그 방에 요강이 있다. 집에선 목욕을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아들을 돌본다. 밥도 차린다. 아들에겐 지적장애가 있다. 괴산보건소의 이 지역 방문간호사는 "청소나 위생관리가 거의 되지 않아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들(출가)이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 진호씨는 장애등록증이 없다. 연금도 없다. 간호사는 "누가 봐도 지적장애인인 게 분명한데, 병원도 가고 행정 절차도 밟는 게 불가능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김씨 부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은 건강보험 본인부담 경감 대상이 유일하다. 병원을 이용할 때 부담비가 대폭 준다. 하지만 "65살이 넘어 약이 공짜인데, 거동이 불편하고 가장 가까운 보건지소까지도 30~40분이 걸리니 직접 타먹을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그 아버지는 때로 밥도 차리기 버겁다. 두유 하나씩을 마신다. 한 끼 식사다. 아들의 삶이 아비의 삶을 견인하는가. 아버지의 나이 아흔, 아들 나이 예순하나다. 간호사는 달에 한 차례씩 김씨를 찾는다.

김씨의 처지는 두 가지를 강력하게 웅변한다. 극빈층보다 경계층이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리기 쉽고, 이들에겐 '삼성병원'보다 보건소 의료진이 더 절실하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6년 차상위계층 실태분석 및 정책제안' 보고서를 보면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차상위계층은 26.68%로, 의료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24.13%)보다 많았다. 특히 10명 가운데 9.4명이 "진료비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8.2명꼴로 병원비를 탓한 수급권자를 압도했다. "의료기관과의 거리가 멀다"고 말한 이는 차상위계층 2.12%, 수급권자 3.34%였다.

건보공단의 통계치를 분석해보면, 실상은 구체화한다. 신안·괴산 주민이 2009년 한 해 진료(건강보험 적용)받은 평균 횟수는 0.96회, 1.09회다. 분당·강남은 2.56회, 4.1회에 달했다. 격차가 2~4배에 이른다.

4만5천 명이 거주하는 신안군은 2010년 관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2682명(1779가구)이라고 밝혔다. 전체 주민의 5.9%에 해당한다. 차상위계층은 4247명(3400가구)으로, 10명 중 1명꼴(9.4%)이다. 인구 3만6천 명의 괴산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6.4%(2367명), 차상위계층이 2.5%(922명)다. 강남(인구 56만2천 명)은 각각 1.8%(9996명), 0.25%(1380명)로 집계된다. 분당(인구 46만 명)은 기초생활수급권자만 0.94%(4345명)다.

괴산보건소의 실무자는 "65살 이상 인구가 30%에 육박하고, 대부분 독거노인 아니면 노부부만 사는 형태"라며 "충주나 청주를 가야 괜찮은 치료를 받는데, 자식들이 데리고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이가 많다"고 말한다.

보건소 전체 예산도 모르는 정부

김씨 부자에게도 보건소 방문간호사가 유일한 의료진이다. 이는 수치로도 설명된다. 2009년 말 현재 주민 1천 명당 의료인력을 분석해보았다. 신안과 괴산은 2.25명, 2.31명이었다. 분당과 강남은 6.16명, 10.45명으로 3~4배에 달했다. 치과의사, 약사, 물리·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도 포함한 결과다. 의사·한의사 수만 따지면 격차가 더 커진다. 신안 1.17명,괴산 1.22명, 분당 3.72명, 강남 7.19명이 된다.

1천 명당 의료시설 수는 신안이 1.48곳, 괴산 1.82곳, 분당 1.85곳, 강남이 4.48곳이었다. 괴산·신안에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노인전문병원, 한방병원, 치과병원이 없다. 대신 일반병원·의원이 신안엔 11곳, 괴산엔 17곳 있다. 신안의 인구가 많은데도, 집적도는 떨어지는 탓이다. 군민 1만 명당 약국은 신안에 2.87곳, 괴산 3.54곳, 분당 3.91곳, 강남에 6.48곳이 있었다. 이들을 포함해 괴산과 신안엔 모두 67개씩의 의료기관이 있다. 그 가운데 절반이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괴산 30곳· 신안 37곳)다. 보건소의 '주치의' 구실이 거듭 확인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앙·지방 정부는 올해 보건소 예산을 삭감했다. 괴산보건소의 경우, 2010년 53억3800만원에서 올해 50억9200만원으로 줄

었다. 국비, 도비, 군비 고루 줄었다. 신안보건소 예산은 2010년 66억4300만원에서 올해 99억5천만원으로 커졌으나, 실상 준 것이다. 보건소 행정실무자는 "40억원가량이 신청사 이전 사업비"라고 설명했다. 보건의료사업·행정 쪽에선 3억원가량이 준 셈이다. 강남보건소도 줄었다. 오직 분당보건소의 재원만은 대폭 증가했다. 2010년 100억140만원이 올해 120억33만원으로 확대됐다. 이곳 실무자는 "보건소 시설 관련 예산도 12억원가량 반영됐고, 유입 인구도 늘었다"고 말했다. 의료서비스·행정 쪽에선 8억원가량을 더 운용할 수 있게 됐다.

2009년 말 신안은 전체 인구 4만5294명 가운데 의료보장 적용 인구는 4만1671명에 불과했다. 괴산은 3만6775명 가운데 3만1822명이었다. 반면 분당과 강남은 의료보장 적용 인구가 주민 수를 초과했다.

예산 삭감의 여파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괴산보건소에는 모두 7명의 방문간호사가 있다. 저마다 300~350가구를 책임진다. 중증 질환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이도 60~90가구씩 포함돼 있다. 방문간호 행정을 책임지는 실무자는 "지방인데다 반경도 넓어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2009년 10여 명이 들락거렸다. 한 간호사는 방문 업무 하루 만에 그만두기도 했다. 박봉 탓도 크다. 그마저 월급이 이달부터 줄게 됐다. 예산이 줄면서다. 정부 방침에 따라, 건강증진 사업을 위한 금연클리닉 간호사·운동처방사·영양사 등 4명은 10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고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방문간호사들은 1년 단위로 재계약해왔다. 조애영 보건소장은 "사람 놓칠까 재계약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보건소 전체 예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무자는 "중앙정부 지원 규모는 알지만, 전체 예산은 253개 보건소에 각각 물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행정의 현주소다. 정부는 올해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비 400억원도 전액 삭감했다. 보건복지의 현주소다.

정말 전국민 의료보험 맞나

한국은 출생과 동시에 건강보험 혜택을 본다. 의무이면서 권리라는 것이다. 건보공단 실무자는 "이 때문에 주민등록 주민과 의료보장 적용 인구는 동일하거나 엇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 한겨레21 > 이 해당 지자체와 건보공단이 내놓은 통계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2009년 말 신안은 전체 인구 4만5294명 가운데 의료보장 적용 인구는 4만1671명에 불과했다. 괴산은 3만6775명 가운데 3만1822명이었다. 반면 분당과 강남은 의료보장 적용 인구가 주민 수를 초과했다.

사실상 건강보험에서 완벽히 소외된 계층이 가난한 지역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행정관청의 인구 집계방식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며 "(수치가 불일치하는) 정확한 이유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계 방식조차 가난한 마을과 부유한 마을끼리 달리한다고 보기 어렵다. 건보공단 쪽은 "분당과 강남의 경우, 행정상 집계되진 않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보는 외국인이나 재외국민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박탈지수와 사망률의 상관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난다. 괴산의 김씨 부자가 분당으로 이사가면 그는 건강해지는가, 행복해지는가. 이사갈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지 않다. 건강 불평등의 알짬이다. 손상이 흔한 마을에 응급전문의 1명 없다는 사실과, 응급센터가 생길 지언정 생사의 각본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란 절망이 딜레마처럼 얽혀있다. 결국 '유전무병, 무전유병'이란 말만 나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