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해석하는 최종적 권한은 누구?[196호] | |
시럽 소분은 ‘조재행위 아니다’ 판결…애매한 부분도 많아 복지부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못써…약사들이 직접 나서야
법무법인 세승 이기선 변호사
법률은 대개 추상적이고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면 약사법에서 “약사가 아닌 종업원 등은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종업원 등’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무슨 행위를 해야 ‘조제’로 처벌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법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의 모든 구체적인 상황을 일일이 다 법에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률을 보다 구체화 시킨 시행령, 시행규칙이 있지만 구체성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1차 판단은 복지부, 최종은 법원 만약 약국에서 일을 도와주는 A약사의 가족 B씨가 A약사를 도와서 처방된 의약품 중 시럽을 큰 병에서 작은 병으로 소분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A약사나 B씨는 약사법을 위반한 것일까요? 법만 보고는 고용관계가 아닌 B씨를 종업원 등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위와 같이 간단한 시럽 소분을 조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판단할까요? 먼저 일차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기관은 행정청, 위와 같은 사례에서는 보건소 공무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사감시에서 위 사항이 적발되었다면 처분을 내릴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니까요. 보건소 공무원이 스스로 법해석에 확신이 없다면 복지부에 질의하는 형식으로 해결할 것입니다. 이 경우 법해석을 복지부가 하게 되겠죠. 그러나 최종적인 법해석 권한은 법원에 있습니다. 즉 보건소 공무원이나 복지부에서 약사법 위반으로 A약사를 행정처분 하면 A약사는 행정소송 등으로 이를 다툴 것이고, 법원이 판결로 위 처분이 옳다고 한다면 A약사와 공무원 모두 이에 구속됩니다. 결국 법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법원의 판단이 가장 최종적 결정이고 가장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럽의 소분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 위 사례에 대한 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약사가 자신의 종업원에게 처방전에 의하여 1,000ml 덕용용기에 들어있는 의약품인 코미시럽을 45ml 조제용기에, 500ml 덕용용기에 들어있는 의약품인 콜민에프시럽을 45ml 조제용기에 각 옮겨 담는 소분행위를 지시했고, 보건소는 ‘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고 규정한 약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약사에게 업무정지 1개월의 처분을 한 사례였습니다. 법원은 “약사법 각 규정의 내용과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어떤 행위가 약사법에 의해 규율되는 조제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및 나아가 그것이 누구의 조제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행위가 가지는 특성 중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는 육체적 작업으로서의 물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되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의 종류와 투약량, 투약방법이 적절한지 여부, 의사의 처방이 의약품의 배합 금기에 위반되는지 여부, 대체조제가 가능한 경우인지 여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투약할 의약품의 종류와 용량, 용기 등을 판단하는 정식적 작업으로서의 의사결정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며 비약사의 조제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처방전을 검토하여 투약할 의약품의 종류와 용량, 용기 등을 직접 판단하고 결정한 것은 약사인 점, 직원의 소분행위는 처방전 상의 일부 의약품에 대하여 투약할 의약품의 종류와 투약량 그리고 투약용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한 위 약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점, 약사의 지시는 조제실 내에서 직원과 직접 대면하여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 감독이 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점, 종업원의 행위는 약사의 지시를 기계적으로 따른 것으로 독자적인 의사결정과정 없이 각 1,000ml와 500ml 단위의 덕용용기에 보관되어 있는 시럽을 각 45ml씩 조제용기에 나누어 담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행위에 불과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종업원의 소분행위는 약사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시와 일체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므로 ‘조제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무원이 법원의 판단에 따라야 할까요? 보건소 공무원이 약사감시를 나가서 종업원이 시럽을 따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위 판결의 취지를 고려해서 공무원이 행정처분이나 고발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위 판결은 1심 판결이고, 다른 사건에서는 다른 판결이 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만약 위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면 결론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1심 판결은 판례공보나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아 그 존재를 쉽게 알 수도 없습니다. 결국 보건소 공무원이 위 판결의 취지를 고려해서 처분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는 일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판결문이 비교적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였다고 하나 다른 상황에서는 의외로 정확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보건소 공무원으로서는 위 판결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판결에서 다룬 사례와 조금이나마 다른 사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럽이 단순이 소분한 것이 아니라 건조시럽에 물을 부어 제조한 후 이를 소분하였다면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럼 공무원은 어떻게 약사법 위반에 대해 판단할까요? 복지부에서 내린 업무지침이나 각 사안에 대해 복지부에 질의한 경우 그 회신을 참조해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업무지침의 필요성 위의 판결은 1심 판결이고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 중에는 비약사 조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다른 판례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좀 다른 사안이긴 하지만 병원 원내 조제실에서 간호사가 조제한 사안에서 법원은 “의사의 의약품 직접 조제가 허용되는 경우에, 비록 의사가 자신의 손으로 의약품을 조제하지 아니하고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의약품을 배합하여 약제를 만들도록 하였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간호사 등을 기계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의사 자신이 직접 조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유사한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결국 보건소 공무원들이 종업원의 소분행위에 대하여 위법성을 평가할 때는 적어도 위 판결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야 약사들에게도 설득력 있는 행정을 할 수 있고, 문제가 확대되어 소송으로 비화된다 할지라도 보건소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얻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일선 보건소 공무원들에게 판례를 고려하여 처분하라는 요구는 무리입니다.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지요. 복지부에서 약사법, 의료법 등에 관하여 나온 판례들을 참조하고 지속적으로 업무지침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위와 같은 판결이 있다는 사실을 복지부가 알아야 하고, 그 취지를 잘 해석해서 일선 보건소에 유사한 경우에는 비약사 조제라는 이유로 행정처분하지 말라고 업무지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복지부가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복지부가 관할하고 있는 업무가 너무 많고 공무원의 수와 능력은 제한적임을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결국 약사들이 이런 부분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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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 : [11-05-21 09:51] | 정필원기자[feel@bi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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