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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약 슈퍼판매..정치력으로 해결 안돼

도일 남건욱 2011. 7. 13. 12:10

일반약 슈퍼판매..정치력으로 해결 안돼 [198호]

소비자와 진솔하게 소통하며 문제 해결하는 노력 필요
임시방편적 대안보다 여론조사 대국민 홍보 적극 나서야


일반약 슈퍼판매 문제가 약사회의 ‘5부제 당번약국’ 제시에 의해 의약품재분류로 해결되는가 싶더니 소비자 편의를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일 약국의 5부제 당번약국과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슈퍼판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7, 8일 연속 보도되는 청와대의 입장은 약사법을 개정해서라도 반드시 슈퍼판매를 하겠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OTC의 약국 외 판매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작년 연말부터 직접 주재한 회의만 5차례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들과 약사회 반발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사실상 포기하자 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을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 편의를 도모하자는 취지였다면 이해 관계자들을 잘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일하는 모습이 참 답답하다”고 말했으며, 8일에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대한약사회가 앞으로 일반약 슈퍼판매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자못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임시방편적 대안은 오래가지 못한다
슈퍼판매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을 이해시키고 동조를 얻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잠시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임시방편적 대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하반기 실시했던 심야응급약국이다.

슈퍼판매를 주장하는 소비자단체의 강력한 목소리에 대응해 취해진 심야응급약국은 그 숫자도 부족할 뿐 아니라 6개월간 이라는 한시적 시범사업에 그치고 말았다. 또 그 한시적 시범사업 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언론으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약사회가 국민과 약속한 심야응급약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만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고백하고 그 이유를 국민에게 알리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심야에 약국을 찾는 환자가 없다. 약국 수입에 도움이 안 된다. 약국 방범에도 문제가 있다. 심야 근무를 하는 약사들의 건강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등등을 분석하고 이러한 자료를 국민에게 알리는 진실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5월 경기도 약사회 학술대회에서 고양시약사회의 심야응급약국 운영 실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약사가 있다. 그는 시간대별, 환자 수, 의약품 판매 내역. 다빈도 의약품, 저빈도 의약품, 판매 금액 등을 상세히 조사하여 제시했다. 그리고 ‘약국이 심야시간대에 순번제로 문을 열면 약국의 접근성이 좋아져 소비자의 편의성을 위해 슈퍼판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 같은 자료가 약사회의 정책 대안으로는 다소 부족함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러한 자료와 보고가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졌어야 했다.


현실을 제대로 읽는 여론조사와 논리가 필요하다
일반약 슈퍼판매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 10년간은 매년 한 두 차례씩 제기되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약사회는 과연 소비자들이 한 밤중에 일반약을 구입하지 못해 겪는 불편이 어느 정도인지,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원하는 요구치가 얼마만큼 높은지를 판단하는 소비자 여론조사를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설문조사란 설문의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 또는 시기나 환경에 따라 그 수치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기재부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슈퍼판매를 요구하는 비율이 68%라는 수치를 제시했지만 과연 이 설문이 정당한 소비자 의견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약사회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이를 반박할 만한 자료도 근거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비즈앤이슈와 경기마퇴본부가 실시한 일반 시민 설문조사에서는 의약품은 약사가 있는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의견이 72%나 됐다. 약사가 없는 슈퍼에서 판매하면 불안하고 걱정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89%를 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벼운 병에 걸리면 약국으로 간다는 비율이 21%로 병원으로 간다(28%)는 비율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것은 한마디로 소비자의 편의는 약국보다 병의원이 더 우선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한약분쟁 때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의 상황은 한약분쟁 때와 똑 같은 상황이다. 한약분쟁 당시 약사회는 ‘약사법에 한약도 약이라고 되어 있다’는 법률적 논리를 앞세워 복지부 국회만 쫓아다니며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한의사회는 ‘한약이니까 한의사가 취급해야 한다’는 손쉬운 논리를 앞세워 한의사는 물론 한의대생, 학부모, 한의대 교수 등 모든 관계자들이 길거리로 나서 소비자에게 호소했다.

약사회가 국회와 정부 관계자를 만나 법적 논리를 주장하고 있을 때 한의사는 일반 시민 속으로 파고들어 국민과 대화한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것은 바로 TV 공개토론 이었다.  모 방속국에서 진행된 토론회에는 약사회 대표와 한의사회 대표 소비자 단체 등이 참여하여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한약, 약사가 취급해야 하나, 한의사가 취급해야 하나’를 놓고 ARS 소비자 투표가 진행됐다.

토론회가 끝날 무렵 공개된 투표 결과는 70대30으로 ‘한의사가 취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당연히 정부도 국회도 한약은 한의사 것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렇게 약사회가 공들여 찾아다닌 복지부와 국회가 더 이상 약사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한약사 제도이고 약사한약조제자격시험이 된 것이다.


소비자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소비자 주권시대가 된지 오래이다.  일본은 이미 1999년(174품목)과 2004년도(371품목)에 일반의약품의 대부분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되어 사실상의 일반약 슈퍼판매 이상으로 개방이 되었다.

또 2009년부터는 일반의약품을 리스크 정도에 따라 3분류(1류, 2류, 3류)하고 ‘등록판매자’라는 새로운 판매제도를 만들어 2류, 3류에 해당하는 일반약은 등록판매자를 고용한 곳이면 어디서든 판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2, 3류에 속하는 의약품이 전체 일반의약품의 85%를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의약품 슈퍼판매를 막기 위해 머리 띠 두르고 단식투쟁하거나 데모를 하지는 않았지만 약의 바른 사용을 위한 소비자 캠페인, 약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물어 알아두세요 라는 ‘Get the Answers 운동', 의약품 적정사용을 위한 의약품 사용 평가사업, 약과 건강의 주간을 통한 약, 약사, 약국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설명회 및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오랫동안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약제사회는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일본약제사회 관계자에게 “왜 일본은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막지 못했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약사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이 약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판매할 경우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말이 국민들의 입을 통해 큰소리로 나오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로부터 슈퍼판매 반대의 목소리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소비자의 힘이 중요함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의약품 부작용’ 문제만으로는 논리가 안 선다
지금 약사회가 의약품 부작용 문제를 이슈로 일반약 슈퍼판매 반대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감기약, 소화제 사는데 약사가 무슨 관계있는데? 약국 가서 감기약 사면 언제 약사가 상세히 상담하고 주나? 그냥 제일 이익이 많이 남는 약이나 팔아먹고 ....” 라는 게 언론에 댓글로 올라오는 소비자들의 의견이다. 약사회가 부작용을 강조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복약지도 한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무슨 부작용이냐는 생각인 것이다. 

또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OTC 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하고 있으나 부작용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비자가 모를 리 없다. 


근거에 중심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약사회는 단순히 부작용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고 그 때 약사의 역할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홍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약사들이 얼마나 일반약에 대해 성실한 복약지도를 하고 판매하는가를 실제 현장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또 이러한 설득은 정확한 자료와 근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2년에 한 번 씩 짝수 해에 수가를 조정한다. 바로 내년이 조제수가를 조정하는 해인데 지금 노인 복약지도료에 대한 평가가 후생노동성 산하 수가조정기구에서 논의 중에 있다.

노인이 약의 복용을 잊어버려 소실되는 의약품이 매년 530억 엔 상당이라는 통계이다. 이를 약사가 복약지도를 더 성실히 하면 400억 엔 정도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약사의 조제수가에 반영해준다면 의약품 손실도 막고 환자의 건강도 빨리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일본약제사회는 전체 의사 처방전 중 약사의 의문조회 비율이 2.39%이며 이 중 약 66%가 의문조회로 인해 처방 변경을 하게 된다는 통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약사의 처방전 검토가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갖게 되는지를 숫자로 밝히는 이며, 이에 대한 이익의 몫은 약사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약사회가 일반약 슈퍼판매를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근거중심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가다듬어야 한다.

글쓴날 : [11-06-18 09:22] admin기자[n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