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특파원칼럼] 워런 버핏을 상기하라

도일 남건욱 2006. 9. 2. 19:42
[특파원칼럼] 워런 버핏을 상기하라

▲ 최우석 워싱턴특파원
몇 해 전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를 맞았을 때였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로 서민들만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껌 파는 아이들이 거리를 메웠고, 밤에는 넝마주이들로 넘쳐났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안팎에서 3000달러로 주저앉았고, 빈곤 계층은 60%에 육박했다. 당시 만났던 아르헨티나 재무부의 경제국장은 “빈곤계층을 50% 이하로 줄이는 게 최대목표”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때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었던 나라가 반세기 만에 삼류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부유층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기자가 묵었던 호텔 옆 오페라 공연장은 모자에 파이프 담배를 문 중년 신사, 모피 코트에 고급 원피스를 입은 중년 부인들로 북적거렸다. 한 부호는 포트폴리오를 국내와 해외에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고 말했다. 페소화(貨)가 폭락하더라도, 해외에 있는 돈을 갖고 들어오면 아르헨티나에서 그 동안 누리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엔 가정부 한 명을 뒀으나, 국가 부도 후 세 명을 둘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페소화가 3분의 1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호는 사회 및 치안 불안에 대한 우려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담 높이를 2m에서 3m로 올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정은 이웃 브라질도 비슷했다. 빈부 격차가 축구만큼이나 세계 최고 수준인 브라질에서 갑부들은 자동차를 타지 않는다. 길이 막힐 뿐 아니라 납치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건물 옥상에 헬리콥터 정거장을 만들어 놓고 헬기로 이 건물 저 건물 옮겨 다니며 비즈니스를 한다. 상파울루가 1인당 헬기 보유율이 세계 최고라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이들을 취재하면서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 사회를 지탱해 주는 엘리트 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느낄 수 없었다.

요즘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국론이 극도로 분열돼 있는 상태다. 집권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는 보기 민망한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나름대로 지키고 있다. 세계 2위의 갑부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최근 370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기부키로 했다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더군다나 버핏 회장은 거액을 내놓으면서 개인 소득세에 대한 절세(節稅) 절차를 전혀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론이 아무리 분열돼도 버핏 회장 같은 사람이 여럿 있기에 미국 사회가 지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였던 한국은 어떤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은 어느새 인도에 이어 브라질에 추월당했다. 이 정부는 자주국방 한답시고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추진하면서 미래 세대마저 거덜 낼 참이다. 오늘의 빈부 격차뿐 아니라 미래의 양극화까지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이토록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정을 책임진 정권에게는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나라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식인, 중·상류 계급, 엘리트, 재벌은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키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전철을 피할 수 있다. 이건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시대적 소명이다.

최우석 워싱턴특파원 wschoi@chosun.com
입력 : 2006.09.01 22:17 15'